노래방 기기 도입 잡담

슬슬 개장을 앞두고 있는 저희 펜션에 조그만 노래방 기기를 하나 들였습니다. 발단은 앞으로의 펜션 운영 방향에 대한 회의 중에 아버님께서 한 마디 하신 것으로 시작.

'아들아, 이제 대충 다 갖춘 것 같은데 한 가지 빠진 게 있구나.'
'그게 무엇입니까, 아버님'
'무릇 여행을 오고 회포를 풀러 온 사람에겐 가무가 꼭 필요한 법이다.'
'비슷한 것이 이미 있지 않습니까. 펜션 부속 영화관을 훌륭하게 갖춰 놓았습니다.'
'남이 만든 걸 보고듣는 것과 직접 부르는 것은 다른 것이다.'

대충 이런 대화가 오간 후에, 엄청나지 않은 선에서 적당하게 갖춰 보기로 의견이 모아져서 우선 대림 상가로 출동.

'아버님, 저건 어떠십니까. 저것도 직접 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비의 눈이 옹이구멍으로 보이느냐? 저건 게임기가 아니더냐.'
'아니, 아버님께서 그걸 어찌...'
'네가 보던 게임잡지에서 보았느니라.'

이런 류의 대화를 나누며 둘러 본 대림 상가에는, 그러나 후줄근하거나 낡은 중고/ 리퍼/ 땡처리 노래방 기기만이 즐비하더군요. 잘 뒤져보면 깔끔한 가게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새로 개장하는 곳에 넣기엔 아무래도 눈에 차지 않는 물건들뿐이었습니다. 어쨌거나, 마이크나 PA앰프 쪽엔 저보다 더 일가견이 있으신 아버지께서도 상태가 영... 하는 눈치셨고.


월광보합 넣은 오락실 통이나 짜서 파는 대림상가 업소 게임 매장들의 작태에 한숨을 쉬던 저를, 아버님께서 뒷덜미를 낚아채서 끌고 가신 곳은 용산전자상가. 용산에도 노래방 기기 파는 매장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 봅니다. TJ니 KY니 익숙한 브랜드의 새 기기들이 멀끔하게 있는 것이 우선 마음에 드셨던 듯. 저는 완전히 무시하시고, 매장 사이를 돌아다니시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십니다.

'저것은 얼마요.'
'아, 이건 이거이거 포함되서, 케이스까지 100만원이고...'
'모니터가 작군. 좀 더 큰 걸 조합할 수 있습니까.'
'케이스랑 맞춰서 나온 모니터가 아니고, 외부 모니터도 4개까지 장착할 수 있는 반주기가...'
'그럼 애초에 모니터 빼고, 케이스도 그거에 맞춰 조립도 되는지.'
'그렇게 만든 것도 있습니다. 이쪽으로...'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 오간 끝에 저희 펜션에 들어오게 된 건 이런 모양의 기기입니다.

(개별 기기 상표는 잘 안 보이게 일부러 좀 흐리하게 찍었습니다.)이동도 쉽게 바퀴가 달린, 스피커 + 앰프 + 반주기가 모두 든 일원화 기기. 요샌 가정/ 펜션용은 이게 대세인지 다들 이 비슷하게 조합해서 팔고 있더군요. 모니터는 원래 아버님께서 쓰시던 걸 HDMI로 연결해 놓으니 땡.

더불어 리모컨, 노래 색인집, 마이크 2개, 탬버린도 2개... 이래저래 딸려놓고 주변 조명을 어둡게 해놓으니 제법 그럴싸하더랬습니다. 아버님께서도 만족하신 눈치시고. 다만 솔직히 전 불필요한 지출이 아니었나... 하고 면상에 8자 주름이 생겼지만, 아버님께선 그런 저를 당연히 무시하셨지요. 당신께서 절 교육하시고 먹여 기른 돈에 비하면 한줌도 안 된다 이런 논리십니다.

'아들아, 그럼 네가 한 곡조 뽑거라.'
'아니, 아버님. 전 직접 노래 부르는 것엔 별 흥미도 자질도 없는 걸 아시면서...'
'상관없다. 주변에 소음이 얼마나 들릴지 시험해 보고 싶은 것 뿐이니라.'

그렇다면 키가 엄청 높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걸로... 그래, 미즈키 나나 씨의 곡들로 해보자. 하고 한 세 곡 부르니까 목이 다 나가더군요. 그동안 주변을 이래저래 돌아보시면서 소음 테스트를 하시던 아버지께선, 만족스러운 얼굴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마이크 테스트는 당신께서 직접 하시더니, 그때부터 노래 삼매경. 아무튼 즐거워하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자니 나쁜 건 아닙니다만... 하기는 적당히 탬버린이나 흔들던 저도 노래 색인집을 보다보니, 적당히 아는 곡이 많기는 했습니다.

이럴 때 분위기 띄우기 좋은 건 역시 Period(강철FA 4쿨 OP). 확실히 최근에 지겨울 정도로 들었던 곡이지만, 제가 직접 부르니 감이 다르긴 했습니다. 너무나 못 불러서 원곡의 느낌이 전혀 안 살아난다는 감이었지만- 케미스트리 이 양반들, 확실히 노래 잘 부르는구나...- , 아버님께선 아무튼 좋아해 주셨으니까 상관없을 겁니다.

하여간 이래서, 저희 펜션에 오신 분들께선 노래도 불러보실 수 있습니다.(유료지만, 일반적인 노래방 요금보단 좀 싸게 매길 생각.) 하기는 대개의 펜션이나 별장엔 이런 기기들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고는 합디다만, 저로선 딱히 도입할 생각이 없었는데... 뭐, 아버님께서 당신의 놀이 기구로만 쓰시더라도 본전은 뽑을 수 있겠지요. 아무튼 노래 부르는 걸 참으로 좋아하시는 분이라서.


덧글

  • dennis 2017/12/05 13:59 # 답글

    저희 아버님 가라오케 머신을 10개월마다 교체하시는데 덕분에 제집엔 안쓰는 기계가 쌓여서 정기적으로 지인들 한테 밥한끼 얻어먹고 한대씩 줍니다. ㅎ
  • 城島勝 2017/12/05 14:43 #

    하핫, 네. dennis님의 지인분들은 행복하시겠네요.^^
  • ㅇㅇ 2017/12/05 16:05 # 삭제 답글

    펜션사업때문에 구매한 노래방기기라 하더라도 좋네요ㅎㅎㅎ
    period 이노래 상당히 어렵지요. 그렇게 높지는 않은데도 노래 음역대가 상당히 중고음이 많아 힘들죠.ㅎㅎ
  • 城島勝 2017/12/05 16:34 #

    말씀하신대롭니다. 전 그냥 얌전히, '잘 듣는 쪽'으로나 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ㅎㅎ
  • 키리바시 2017/12/05 17:48 # 답글

    노래방기기 좋지요
    제 주변에는 DAM을 들여놓은 용자분도 있으신..
  • 城島勝 2017/12/06 10:07 #

    아하, 가라오케DAM 말씀이군요. 일본곡 특화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듣긴 했습니다.ㅎㅎ
  • 산타 2017/12/05 19:13 # 삭제 답글

    가가갓 가가갓 가오가이가~!!! 노래도 당연히 있겠죠? ㅎㅎㅎ
  • 城島勝 2017/12/06 10:07 #

    용자왕탄생도 물론 있습니다. 반주기의 음정 낮춤 기능을 써서 바리톤 음색으로 장중하게 불러보니 색다르더군요. 껄껄;
  • 이름 없음 2017/12/06 09:16 # 답글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근황이... (엠투입니다. 잘 지내시죠?)
    펜션 하신다는 소식은 보았는데 아직 오픈을 안 했군요. 저로서는 아버님의 혜안에 박수를...
  • 城島勝 2017/12/06 10:08 #

    후후, 네. 개장 후에 M2공께서도 언제 한 번 오시면 잘 모시겠습니다.^^
  • SCV君 2017/12/07 01:01 # 답글

    그러고보니 아직 개장한다는 이야기를 하신적이 없었네요.
    이걸 보니 가끔 보던 리듬게임기 집에 들인 사례같아 보여서 좀 재밌네요. 여긴 가정집이면서 가정집이 아니긴 합니다만(...)
  • 城島勝 2017/12/07 05:26 #

    ㅎㅎ네. 정식 개장은 안 했지만, 내장이나 설비는 거의 다 되었으니 언제 시간 나심 테스트 유저로 와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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