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음원/음반/서적 감상

일전에 언급한대로, 요네자와 호노부 씨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고전부 시리즈- 중 여섯번째 권에 해당하는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원제: いまさら翼といわれても)를 읽어 보았습니다. 원래는 좀 더 빨리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바쁜 일들이 겹치다보니 연휴 막바지에야 시간을 낼 수 있었네요.

전 틈틈이 읽을거리를 손에 잡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인터넷 페이지의 실없는 이야기를 읽건 거장의 소설을 읽건, 독서를 위해 굳이 시간을 내지는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이전의 고전부 시리즈들을 읽었던 경험으로 미루어 두어 시간 정도 방해없이 몰두할 시간을 잡았더랬습니다. 한번에 읽어내리려면 저 정도 시간은 드는 분량인데, 이 시리즈는 대개 단번에 읽어내리고 싶어지다보니. 그만큼 흡인력이 있는 작품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말이지요.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는 작가가 잡지에 기고한 단편 여섯 편을 모아 발간한 책으로, 작중 시간의 흐름이 반드시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대전제는 이제 2학년이 된 고전부 아이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접하게 된 원인인 TVA '빙과'에서 그리는 시간대에서 1년이 지난 것으로, 2학년이 된 것 자체는 이미 지난 권인 '두 사람의 거리 추정'에서였지만- 이 애들이 한 살 더 먹었구나 싶은 감상은 솔직히 이번 권의 단편들에서 더 와닿는 편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한번 읽어들 보시라고 권하기도 할겸 묻어두기로 하고, 그러고보니 여기 실린 단편 중 한 편은 TVA 빙과에서도 이미 다뤄져서 익숙하기도 한데(TVA 제18화: 봉우리들은 맑은가. 본 번역서의 번역은 '첩첩 산봉우리는 맑은가')... 사실 이 편은, 이 한 권의 단편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특별할 수도 있는 진로에 대한 고민- 에선 좀 빗겨난 이야기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없는 호타로가, 그런 고민이 있는 에루에 대해 제3자로서 지켜보는 심리를 서술하는 마지막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선 필요하겠다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호타로는, 꽤 상냥한 주인공이란 말이지요. 캐릭터 본인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런 캐릭터를 창조해 낸 작가 요네자와 씨는 아무튼 상냥한 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이니까 이런 캐릭터를 창조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전부터 느꼈지만 요네자와 씨의 문체는, 고전부 시리즈 이외의 다른 작품에서도 충분히 느낀대로, 전반적으로 '건조하지만 따뜻한 손'을 잡는 느낌입니다. 담담하지만 필요한 서술- 예를 들면 감정의 움직임을, 기복 없이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을 잊지는 않고, 상냥하지만 굳이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는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문체의 소설을 영상화한 TVA 빙과의 분위기는 글쎄... 이런 미덕을 그대로 전달하기가 약간 어려우니(그대로 전달했다간 영상물로선 사람 재우기 십상이니), 의도적으로 동작들을 크게/ 과장된 캐릭터들을 그리고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싶기도 합니다. 단지 제 기준에서 취사 선택한 결과로 제가 가지고 있는 빙과 BD는 전부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일부 편들 뿐이지만, 그건 여기선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고.

다만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일 수도 있는데, 어쩐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종종 TVA 빙과 속에서 그려놓은 주역 캐릭터들- 모습뿐 아니라 행동거지들도- 이 시각 정보로 떠올라서 약간 곤란하긴 했습니다. 어쩐지 소설 속의 이 아이들은, 애니로 그려진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 좀 곤혹스러워 할 것 같기도 해서요. 저도 진지하게 보았던 TVA 빙과의 영상미나 미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분위기를 다잡는 음악들, 거기에 열과 성을 다했던 쿄토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을 뭐라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순수하게 '곤혹스러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선악우열미추가 아니라, 순수하게 말이지요.

언젠가 분량이 차면 쿄애니가 TVA화한 권수 이후의 분량을 영상화할 수도 있고, 그땐 이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역시 포함될 것 같습니다. 그때 어떤 모양새로 이 이야기들이 그려질지, '봉우리들은 맑은가'를 본 기억을 떠올리면 얼추 짐작이 가기도 하네요. 다만 그렇다고 어느 쪽이 더 우수하다 어느 쪽은 열등하거나 천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닙니다. 그저, 캐릭터들도 그렇고 제작자들도 꽤 곤혹스러울 것 같긴 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아주 미묘하게, 쓰지만 뒷맛은 좋은 녹차 같은 느낌의 한 권입니다. 이 맛을 바로 다기에 담는, 다시 말해 이 소설- 그 이외의 방법으로 즐기는 것이 가능할지는 글쎄요... 이렇게 잘 우린 녹차를 캔이나 플라스틱 통에 담으면 어떤 맛이 날지 생각해 보는 것 같습니다. 하기는 만드는 쪽은 생각도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에너지 낭비겠지요. 하지만 어쩐지 재미있네요.


PS:
고전부 시리즈는 엘릭시르의 번역서로는 처음 읽었는데, 번역도 깔끔하고 담담하게 잘 옮겨졌다고 생각합니다. 외래어 표기법을 지킨 두음법칙들- 지탄다만 화제가 되는 것 같지만, 가미야마 고등학교나 주몬지 가호도 있습니다.- 도 일관성 있게 잘 지키고 있고요. 다만 이때문에 수록 단편 중 하나에서 표기와 서술이 약간 어긋나긴 했는데- 원문에선 당연하게도 'T'라고 표시되지만, 번역서에선 '도'라고 읽어서- 이것이 이야기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덧글

  • 루루카 2017/10/10 14:16 # 답글

    아, 저도 이거 사야 하는데... 이번 달에는 사야죠~
  • 城島勝 2017/10/10 21:58 #

    네,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권에선 마야카가 인상적이더군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