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즈 & 판처 극장판 특집 2편 - 이야기 개봉영화/TV,A/공연 감상

이번 주에는 한 주 동안 총 4회(월, 수, 금, 일 스케줄)에 걸쳐 걸즈 & 판처 극장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생각입니다.

- 1편은 이 작품의 사운드 메이킹에 대한 관계자 언급 및 몇몇 실례를 통한 제작자/ 청취자 간의 소통을 논하고 (링크)
- 2편은 이 애니의 스토리에 대한 관계자 언급 및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시각에서의 비평을 다루며 < (이번 편은 여기)
- 3편은 걸즈 & 판처 극장판(이하 걸장판) BD 한정판에 동봉된 스페셜 디스크 감상을 언급하고
- 4편은 걸장판 BD 본편 디스크에 대한 리뷰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 포스트의 실제 게시일은 개인사정에 따라 공시일에서 하루나 이틀 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1. 서문

이 포스트는 어디까지나 이 애니메이션을 이미 감상하신 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래야 이야기의 자유가 보장되기에- 스포일러가 충만하다 그러니 열람에 주의하시라... 라는 말씀을 드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이 애니의 스토리 라인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거니와 딱히 전해 들어 알고 보러간다 한들 관람 재미를 떨어뜨리지도 않는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다만 이 포스트의 주제만을 다루기에도 페이지가, 라기 보다는 제 인내와 필력이 모자라서 TVA 에서 몇 편의 OVA를 거쳐 극장판으로 이어진 이 애니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을 위해 따로 세계관을 포함한 전체적인 스토리, 배경, 캐릭터 설명 등을 시시콜콜 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다소 불친절한 바는 있으므로 이건 다소간의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애니의 스토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전략)...일본 각지의 여학교에서 전차도(라는 이름의 일종의 스포츠)를 통해 학교의 명예를 다투고 인기를 구가하는 가운데, 전차도에 참가하지 않는 학교로 전학 온 주인공 소녀가 입학생 감소로 폐교 위기에 직면한 학교를 부흥시키기 위해 전차도를 부활시킨 이 학교의 에이스로서 전차도 전국 고교생 대회에 참가한다는 이야기...(후략) 입니다. 아니, 이건 TV판 스토리잖아? 라고 하셔도... 저건 이 애니의 TV판뿐만 아니라 극장판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줄거리라서요. 극장판에서는 마지막 줄의 '전차도 전국 고교생 대회에 참가한다는 이야기'가 '대학 선발팀과 시합을 벌인다는 이야기'로 바뀔 따름입니다. 한 줄 더 추가하면 그 앞에 '폐교를 저지한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란 걸 알고'라고 쓰면 되겠죠. 하여간 이 포스트의 시작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2. 폐교 again

본래 전차를 모는 소녀들이라는 굉장히 아귀가 안 맞는 소재의 융합을 다룬 이 애니가 성공작으로 발돋움한 것은 단순히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의 트렌드인 미소녀를 앞세운 판촉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1항에서 서술한 줄거리를 가지고 일종의 '성취형 스포츠물'이라는 특성을 가진 스토리를 잘 풀어냈다는 점과 전차라는 일반적으로는 생경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룰 수 있는 범위 한도내에서 생동감있게 표현해낸 연출력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캐릭터들에게 동기가 부여되는)'명시적인 목적'과 (시청자들에게 동기가 부여되는)'쉽게 확인 가능한, 목적 성취의 단계를 걸어 올라가는 모습', 여기에 이 (다소 특이해도 아무튼)스포츠 경기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면 할 수록 재미를 더할 수 있는 소재라는 시너지가 더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폐교 저지라는 소재가 와닿는 수준을 평범하게 신생아가 넘치던 시절의 대한민국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 콩나물 시루 학교가 문을 닫을 리도 없거니와, 문을 닫더라도 다른 데로 전학가면 그만이지. 근방에 차고 넘치는 게 학교인걸. 애교심? 그건 먹는 건가요?- 이 소재의 역할은 딱히 호소력이나 와닿는 정도가 아니라 (캐릭터들이 움직이는)목적의 제시라는 점에 있고, 간혹 이게 와닿는 사람에겐 감정적으로 호소하기에도 나쁘지 않으니 이걸 뭐라고 하는 건 물론 아닙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동기가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 밥 줄 돈을 마련하러 전차도 대회의 우승 상금을 노리고 출전한다.' < 이런 거라도 별로 상관은 없었을 거라 봅니다만(땅끄 기름값이 더 나가겠다 같은 태클은 이 애니 분위기에 안 맞는 거 아시겠고)- 일본 애니에 무슨 대단한 이야기, 주제의 전달, 교훈 같은 걸 바랄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이 애니가 그런 걸 노리지 않는다는 것도 척하면 착이니까- 아무튼 이 애니의 제작진은 이 정도 동기가 딱 좋다는 생각으로 TV 방송 애니의 스토리를 구상한 모양입니다.

다시 말해 이 '폐교 저지'라는 등장 캐릭터들의 목적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호소감이 있었는지는 무슨 설문 조사를 한 것도 아니고 알 수 없지만, 애초에 이 목적은 시청자들이 아니라 등장 캐릭터들을 격동시키려는 것이고 시청자에겐 그냥 그런 게 있다 > 그러니 그 목적을 어떻게 이루는지를 봐달라 라는 메시지라고 개인적으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TV판 최종화에서 대회 우승을 달성하면서 저지된 줄 알았던 이 '폐교'라는 써먹기 좋긴 하지만 진부하기도 그만큼 진부한 명제가 실은 완료가 안 됐다지 뭡니까. 그러니까 극장판에서도 또 그(놈의) 폐교를 저지하러 일어서야 한댑니다. 진짜로 개봉한지 9개월이 되도록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있다가 한국에서 극장판을 보았던 저로서는 솔직히 컬처 쇼크(웃음)를 받고 말았습니다...

3. 이 재활용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

제가 받은 컬처 쇼크란 바로 이 항목의 제목과 같은 감상이었지만 그렇다고 극장판 스토리의 목적이 밝혀진 시점에(러닝 타임상으로는 대략 시작한지 30분 정도 지난 시점) 그럼 안 볼 거야? 라고 물어보셔도, 이미 그 비싼 4DX 표를 끊고 일껏 영화관까지 와 자리에 앉은 상황에 더구나 초장 몇십 분간 신나는 전차전으로 분위기를 띄워놓은 상태에서 그냥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제작진 양반들을 믿어 보자- 하면서 끝까지 본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좋게도 나쁘게도 예상을 빗나가진 않았습니다. 그 예상은 "이 애니는 TV에서나 극장에서나 '폐교 저지'는 그냥 간판이고 실제론 여자 아이들이 탄 스포츠 전차전을 자세하게 박진감 있게 묘사하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고 실제로 이 극장판 애니도 온전히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그럼 된 거네? 라고 하셔도... 딱히 미즈시마 감독 이하 제작진들의 건투를 빈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들의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는 화끈한 전차 놀이는 전차 놀이고 그게 끝난 다음에 머리를 굴려보자니 이 재활용에 뭐라도 있기는 한지 좀 궁금해지긴 했습니다. 그래서 세워 본 가설은 두 가지였지요.

A. 제작진은 정말로 이거(폐교 저지) 외엔 좋은 소재가 없다고 생각하여, 이에 맞게 이야기를 구성했다.
B. 제작진은 전차전 보여주기에 올인하고자 설명도 이해도 필요없는 소재를 골랐고 거기에 맞게 이야기를 대충 때웠다.

개중에서 제가 무게를 둔 건 B였는데, 거기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ㄱ. 초장 30분 가까이를 전차전에 쓰고, 후반 1시간 가까이를 또 전차전에 쓰니, 남는 시간은 달랑 30분.
ㄴ. 다시 말해 TVA 한 화 정도의 시간으로 전개해서 욕먹지 않는 이야기란 익숙 당연 식상 평범한 소재로 풀어내는 이야기.
ㄷ. 시간 배분을 저리 해놨다는 건 애초부터 스토리 전개력으로 승부하겠단 발상이 아닐 것이다.
ㄹ. 당연히 캐릭터의 동기를 따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데 들일 시간도 없다. 그럴 시간에 전차포 한 방을 더 쏘는 게 흥행효율적이고.
ㅁ. ㄱ~ㄹ에 따라 결국 TV판에서 이미 한 소재를 다시 끌고 오는 게 베스트.

한 이야기를 또 하니 스토리 구상과 전개 구성 능력을 시험받을 일도 없고, 이미 왜 이런 목적에 저리 진지하게 나서는지 TV판에서 말했으니 주역 캐릭터 심리를 또 열심히 설명할 필요 없이 살만 좀 붙여주면 그만이고, 그 시간에 신 캐릭터들 모습도 좀 보여줄 수 있고. 여기에다 좀 더 생각을 전개하면 길고 진지한 이야기를 만드는데 서투른 걸 들킬 염려도 없다- 애초에 이 애니는 진지한 이야기를 길게 하면 두드러기가 돋는 분위기의 애니기도 하고- 란 것도 노린 게 아닌가 그런 생각마저 들더군요. 뭐, 이건 좀 오버한 거라 치더라도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런 프로세스입니다. 1. 아무리 그래도 미즈시마 감독 이하 제작진들이 그렇게 소재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2. 그러니까 효율성을 추구하고자 아무 생각없이 간판으로 걸어놓을 수준의 소재를 뽑아 이야기를 대충 때웠다, 3. 그 덕에 전차전에 올인할 기력과 시간을 얻었다...

4. 아니, A입니다.

그런데 이 가설은 즐겁게 다시 Säkkijärven Polkka (샛키예르비의 폴카)를 들으며 칼의 폭음을 어떻게 재현할지 홈씨어터 시스템을 다잡아보자- 는 이유로 산 이 극장판 애니 BD 한정판... 의 북클릿(상기 사진. 쿠로모리미네 페이지를 실은 건 선호 캐릭터가 마호라서.)을 보다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애매모호한 것도 아니고 아주 정통으로 A라지 뭡니까. 진짜로 이거 외엔 좋은 소재가 없다고 생각해서, 이걸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겁니다. 그것도 각본(요시다 레이코 씨)과 감독(미즈시마 츠토무 씨)이 입을 모아 그러더라니까요.

구체적으로 이 BD 북클릿에 실린 각본 요시다 레이코 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극장판에서 (또)폐교 문제를 들고 나온 이유는 캐릭터들에게 (변화해 가는)'동기 부여'를 들고 있으며 미즈시마 감독 역시 한참 다들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이 폐교란 소재가 바로 '너무 시리어스하면 작품 분위기가 달라져 버리니 안 되고, 그렇다고 아무런 동기 부여도 안 되는 건 곤란하니 딱 이게(= 폐교 저지가) 적당한' 거였다고 합니다. 딴 학교는 아무튼 이기려고 싸우면 그만이지만, 오아라이 여고 애들은 (TV판에서)학교를 구하고 싶어서 강해졌으니까, 그걸 조명하고 + (별도의 설명없이)이 애들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쉽고 빠르게 보여줄 수 있는 동기 소재는 역시 저것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던 모양. 거기에 덤으로, TV판에서 오아라이 애들끼리 '폐교는 면했어!'라고 했지만 거기에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던 것- TV판은 물론 그 이후 OVA 등 어디에도 관료 나리께서 정식으로 '폐교 취소할게'라고 인증하지 않았던 것- 도 다행이라는 투의 인터뷰 뉘앙스로 봐서는 진짜로 제작진은 '폐교 저지밖에 없다!'를 진지하게 믿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더군요.

그밖에, 이 항목은 온전히 제작진의 의견을 (밝혀준 범위 안에서)말하려는 부분이니 몇 가지 감독 발언 요약을 좀 더 첨부하면

A. 콘티와 각본은 본래 더 많은 분량이 있었지만, 컷컷컷 해서 나온 게 지금 완성판의 러닝 타임과 이야기
B. 전차전은 총 3회를 상정했는데 제작위원회 측은 전후반 2회=전반도 시간 들여 묘사하고 후반에 비중 실으면 충분하다는 의견
C. TV판 최종전(대 쿠로모리미네)이 40분 가량이었는데, 극장판 최종전은 60분도 모자랄 줄은 생각도 못했다

5. 이것이 미즈시마류?

4항에서 소개한 과정을 거쳐 소재가 결정되고, 플롯이 잡히고, 살이 붙은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스토리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일전에 영화관 관람 직후 작성한 감상문에도 언급했듯이 '...(전략) 쓰잘데기없이 어깨에 힘 넣지 않고, 자기들이 만드는 게 어떤 물건인지 확실히 잘 알고 필요한데 전념하여 뽑은 느낌입니다. 무슨 교훈이 필요한 것도, 철저한 고증이 필요한 것도, 피와 땀과 눈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짧은 치마의 미소녀들'이 '(무지무지 빠른)전차를 몰아서' '스포츠 전차전이라는 애니로만 재현 가능한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란 것을 완벽히 이해하고 딱 거기에 충실했기에 좋은 극장판 애니라는 느낌?...(후략)' 입니다.

이 감상에는 한편으로 '(제 나름의 상냥한)포기' 같은 뉘앙스도 붙어 있는데, 그건 3항에서 언급한대로 제가 3항의 B를 원인으로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헌데, B가 아니라 A라면 글쎄... 좀 다시 생각해 보고 싶기도 하더군요. 그게 이 포스트를 작성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이기도 하고.

A. 솔직히 이제와서 미호를 비롯한 주역 애들이 뭘 더 강해지려는 이유와 동기 부여가 필요한지?
B. 그게 필요하다손 치더라도 또 폐교 저지라니, 제작진에 그리 상상력이 없었단 말인가?
C. 그렇다고 A가 목적대로 충실히 반영되어 시청자에게 그 감이 전달되는가?

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을 때, 우선 A는 이 포스트를 작성하기 얼마 전, '걸즈 & 판처 최종장'이란 이름으로 이 애니의 새로운 시리즈를 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납득했습니다. 아직 레벨 업을 시킬 여지를 남겨두고, 그런 중이란 걸 명시해야, 최종장이란 새로운 이야기를 할 여지가 마련되니까. 다음, B는 뭐... 없다고 해둡시다.(웃음) 사실 각본가인 요시다 레이코 씨는 개인적으로 '타마코 러브스토리'에서 그 이름을 확실히 기억한 이래- 많은 분들이 케잌온! 에서 이 이름을 기억하셨겠으나- 나름대로 이 분이 구성이나 각본을 쓴 작품들을 둘러 봤지만 확실히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아기자기하게 엮는 건 장기여도 기발한 상상력이나 기상천외한 전개를 본 건 없으며... 미즈시마 츠토무 감독이야 솔직히... 연출력이 감독력보다 더 위인 것 같은지라... 하기는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하고 미덕인 것은 아닙니다. 요즘 시대 일본 애니에 중요한 건 '말이 되고, 보기에 재미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고 이것만도 못해서 허덕이는 게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전 일단 이 정도로 납득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까 모르겠지만.(쓴웃음)

그래서 결국 남은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C로- 그런 의도를 했다면 최소한 그런 의도가 제대로 나타났느냐? 이 부분이 개인적인 이 애니의 이야기에 대한 평가를 정하는 기준점이 되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논하자면 미즈시마 감독은 그 나름대로 캐릭터들이 TV판에 비해 또 한 발 나아갔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연출들을 곳곳에 심어두기는 했습니다. 예를 들면 대학 선발팀과의 시합이 끝난 직후에 미호가 전차에서 내리면서 TV판과 달리 비틀거리지 않는 것도 그 나름대로 성장한 것을 웅변하는 것이다- 같은 거(제작진이 실제로 한 말)라든가. 이런 식으로 오아라이의 모든 애들을 다 돌본 건 아니지만, 시간상 그럴 수도 없었을 테지만, 최소한 아귀 팀 애들이나 각 팀 대표 멤버라도 쏘삭쏘삭 보여주고 가는 걸 보면 아무튼 '그런 의지는 (부족하나마)보였다.' 정도로는 판단하고 싶습니다. 하는 김에 다른 학교 멤버들과 적으로 등장하는 대학 선발팀 캐릭터들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좋았겠지만, 그런 서사시(웃음)가 현 걸장판의 결과물인 '러닝 타임 75%를 차지하는 신나는 전차전' 시간을 꽤 뺏어 가면서도 이 애니에 지금 같은 고평가를 얻어내려면 상당히 머리 좀 써야 할 겁니다. 조금만 삐끗하면 아무것도 납득할 수 없는 물건이 될 염려도 있고. 그러니까 '기대하지 않았다' 정도의 뉘앙스로, '예상대로 뽑았다'는 일종의 (상냥한)포기라는 입장에서 전 저렇게 판단하고 싶습니다.

6. 그래서 섬멸전입니다!

허나 이 5항의 C에 대해서 전 그럭저럭 납득했다손 치더라도, 좀 더 객관적으로 따져 보자면 A. 관객들에게 순전히 화면만으로 얼마나 어필하고 있느냐란 것(이런 제반 사항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이걸 알아줄 것이냐)과 B. 애초에 설명을 할 시간이 없으니 이런 단편적인 연출 요소로 마스킹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냐 하는 일종의 책임론은 남습니다. 앞서도 언급한 BD 한정판 북클릿에서 미즈시마 감독이 직접 언급한 바에 따르면 '2시간이 넘으면 예산적으로도 이래저래 오버니까' 요리조리 쳐내가며 도달한 결론이 지금의 걸장판인데- 거기서 무려 75%가 전차전으로 채워진 이 극장판 애니는 누가 봐도 전차전에 역량을 (최대한)쏟은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아주 기상천외하고 재미있게 펼쳐진 전차전이 (4DX란 여흥까지 포함해서)이 정도로 시간을 먹어주지 않았으면 이 극장판 애니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박했을 겁니다.

이건 굳이 설문 조사 같은 거 하지 않아도 충분히 확신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 이유는 이런저런 제작진 의도나 제반 사항을 듣지 못한 입장에서 볼 때(북클릿이나 기타 가이드 북을 보지 않은 상태로 이 극장판을 본 시점의 제 감상도 포함해서) 제작진의 안배나 의도를 캐치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고, 설령 캐치했다 하더라도 '이 정도론 부족한 게 아닌가?' 할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콘티나 이야기는 쳐내면서도 전차전은 예상치 못할 정도의 시간이 할애되었다는 것(= 그렇게 만들고 쳐내지 않았다는 것)은 제작진이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뒀는지에 대한 상당히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고. 다만 원래 전 이렇게 전차전 러닝 타임을 왕창 할애한 것이 제작진이 (어쩔 수 없었던)이야기의 빈약함을 덮기 위한 가리개라고 생각했지만, BD 한정판 북클릿의 서술을 볼 때 제작진은 이래저래 이야기도 전차전도 자기들 나름대로 줄줄 늘어놓은 걸 2시간에 맞춰 쳐내다 보니 전차전만 왕창 남았다. < 이런 식에 더 가깝다고 보입니다. 말하자면 자기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것이고, 이정도면 이야기는 잘 전달됐을테지 하고 맘대로 만족하고 넘어갔다고 할 수도 있겠고.

그리고 이런 일종의 (제작진 스스로의)만족은, 극장판의 핵심인 후반 전차전이 TV판과 달리 '섬멸전'이란 규칙을 쓰게 된 이유라는 생각도 듭니다. TV판의 '깃발전'에 비해 어느 한쪽의 모든 전차를 다 때려부숴야 종료되는 섬멸전 규칙은 (주로 주역인 오아라이 측에게 늘 걸려 온)전차 성능차 핸디를 더 크게 만들고, 전술 의외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부작용이 있고 실제로 그래서 TV판에 비해 아기자기함이 줄어든 것은 사실인데- 제작진의 입장은 이건 초전 오아라이 익시비전에서 즐기시고 후반전은 우리가 깔아놓은 판세를 즐기시라 뭐 이런 의도가 들어있다고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A. 초반전에 깃발전을 했고 후반전에 또 하면 TV판과 달라지는 게 없다. 안그래도 '또 폐교저지'인데 전차전까지 같으면 곤란해
B. 우회를 하건 길막기를 하건 극단적으론 플래그 전차 한 대만 부시면 그만인 깃발전보다 아무튼 포를 한 발이라도 더 쏘게 되지
C. (TV판보다)더 절망적인 상황을 만들어, 거기서 일어서는 카타르시스를 강화하자
D. (어차피 흥행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전차전과 함께, 캐릭터들의 성장과 변화를 함께 논하자

A는 이야기적 차별점을 노리기 위해, B는 연출적/ AV적인 차별점과 강화를 노리기 위해, C는 스포츠 석세스물의 왕도였던 TV판에서 좀 더 조미료를 뿌린 것, D는 C와 함께 TV판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에서 얘들이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면서 '변화'를 논할 수 있다는(최소한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판은 깔아둘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합니다. 덤으로 연출에 장기가 있는 미즈시마류가, TV판에 이어 보다 유감없이 (전차전의)연출을 신나게 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여기서 말한 연출은 전술의 묘가 아니라 어떻게 멋지게 부시고, 신나게 쏘는가 이런 쪽입니다.)

7. 맺음말

이 포스트는 제법 길게 줄줄 논한 바에 대해 '그렇구나'란 긍정을 굳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그렇지?'하고 말하고픈 의도도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주관에 따라,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들어 이야기에 대한 감상과 그렇게 된 이유를 추론해 본 것이고, 미즈시마 감독이 확인해 주기라도 하지 않는 한(그럴 일도 없을 것이고) 사실이라고 보증할 수도 없습니다. 즉, 그냥 깊게 생각할 것 없는 이 극장판 애니의 이야기에 대해 비슷한 수준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 것에 불과합니다.

다만 이래저래 논한 부분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건, 적어도 제작진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들이 옳다고 믿는 바를 능력에 맞게 행했다는 것이고 이 부분은 각본, 감독, 그 외 여러 제작진의 북클릿 인터뷰 언급을 볼 때 어느정도 확신하고도 있습니다. 어느 제작진이 자기 작업품에 대해 이정도 멘트를 하지 않는가 하는 견해도 있겠습니다만, 작품에 따라서는 아예 자기가 끼었다고 하지 말라고 대놓고 말하는 제작진도 간혹 있는 걸 생각하면(웃음) 적어도 이 애니를 만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든 것에 대해 꽤 자부심마저도 느껴지는 어조로 인터뷰를 하고 있더군요.

물론 그쪽은 그쪽이고,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당연히 별개입니다. 백인 백색-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감상의 차이는 있는 것이고 이 애니의 '이야기적 측면'이 만족과 불만족 중 어느 쪽에 더 눈금이 가까운지도 사람따라 다를 것입니다. 개인적으론 (여러 제반사항을 감안해)딱 예상한대로 뽑혔으니 내 예상에 만족하여 만족해 주자 뭐 이런 입장이지만 다른 분들께 이런 입장을 강요할 생각 같은 건 물론 없습니다. 제가 무슨 걸판 홍보팀도 아닌데 그런 강요를 할 이유도 없고. 좋은 부분은 좋다- 주로 이 작품의 AV 측면에 대해서는, 유감도 이의도 없이 좋다고 말할 부분이 꽤 많습니다.- 그냥 그런 부분은 그냥 그렇다- 주로 이 애니의 이야기 측면에 대해서는, 서문 언저리에도 밝혔듯이 (상냥하게)포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 감상이 나온 거- 이렇게 논할 따름이죠.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이야기'에 대한 총평은 다가 올 '최종장'에서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젠 진짜로 폐교 소재는 두 번 다시 써먹을 수 없게 못이 박혔으니, 없는 상상력을 다 짜내서라도 뭔가 새로운 동기를 이유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고 그걸 어떻게 능수능란하게 풀어놓을지 그 점이 주안점이 되리라고 봅니다. 거기까지 포함해서, 현재 극장판으로 인해 '전차전을 거드는, 구색이나 맞추는 입간판 수준'임이 거의 못박히다시피 한 이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이야기'가 좀 다른 수준의 스텝을 보여줄지 나름대로 신경이 쓰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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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JOSH 2016/09/06 10:01 # 답글

    감독인터뷰를 보면 솔직하게 말해줘서 좋긴 하더군요....
    이게 원작이 있고 장래를 안배한 작품이라면 좀 더 스토리가 부드럽게 전개될 수도 있었겠지만,
    TV판 자체로 성패를 내고 그걸로 끝날 수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을 써먹어버렸고.... 폐교 + 우승
    그러다 보니 후속작을 연출하는데 있어서 제작 기간도 부족하니까
    배째고 안일하게 갈 수 밖에 없었다고 실토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본 라노베 공모전에서도 1권으로 완결되는걸 조건으로 뽑는데,
    뽑아놓고 나서는 작가에게 후속권 써... 라고 해서
    작가 멘붕 빠지게 하고 세계관 망치는 문제가 종종 토로되고 있는거와 비슷하달 수 있겠네요.

    이러면 말이죠...
    어차피 일본에서는 TV판 내고 나서 OVA나 극장판에서는 등장캐릭터의 인간관계나 대립구도를
    확 재구성 해서 내는 패러랠월드도 종종 있는데 그렇게 새로 구성해도 좋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나온지 5년도 안되어 리메잌ㅋㅋㅋ)
  • eggry 2016/09/06 12:37 #

    마크로스…?
  • JOSH 2016/09/06 17:00 #

    건담 도 TV판과 극장판의 설정이나 전개가 약간 달라졌죠.
    단바인, 가리안, 마크로스 들도 그렇고...
    아.. 에스카플로네도 있군요.
    에바는 이게 리메이크인지 루프인지 모르겠지만 ㅋㅋ
  • 城島勝 2016/09/07 07:26 #

    저도 솔직해서 좋다고 생각합니다.-_-ㅋ 좋건 싫건 자기 의사를 적극 표명해 주는 제작자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해석의 문제는 시청자에게 맡기고.

    그러고보면 극장판의 첫머리가 TV판의 자기들 모습을 영화관 스크린으로 지켜보는 캐릭터들로 시작하는 작품이 1년에 십여 편씩 나오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겠지만, 한둘쯤 있어서 눈살 찌푸릴 일이 생길 것 같진 않네요. 만든지 5년이 아니라 5개월만에 그러더라도... 으하핫;
  • 산타 2016/09/06 13:17 # 삭제 답글

    문닫을 위기에 처한 학교를 구하기 위해 아이돌하는 애니메이션이 생각나네요. 일본은 도시에서조차 문닫는 학교가 많은 건가? 싶기도 하고요.
  • 城島勝 2016/09/07 07:27 #

    분명 정말 대도시 제외하면 곳곳에서 폐교 위기에 빠진 학교가 많아지고는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감정적으로 와닿건 닿지 않건, 미디어에서 이슈가 종종 되니까 익숙해진 소재를 가져다 쓴다는 이유도 있겠고...

    그 외에도 일본 애니들이 흔히 주역으로 내세우게 된 미성년 학생들이 합심해서 일어나야 할 만한 위기 같은 게 흔한 건 아니니까요. 전쟁, 지구멸망 이런 건 스케일이 너무 커지고 가볍게 다루기도 어려우니 폐교 정도가 딱 수위적절한 위험이긴 하지요. 퍼허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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