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영화관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 했는데, 전 관을 특별관- 부티크M 관이라던가요- 으로 채웠다길래 한 번 그 위세를 실감해 보고자 볼 영화를 고르다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을 보았습니다. 어째 주객이 좀 전도된 것 같지만...(웃음)
스콧 감독은 달리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한 감독님이지만 어찌 된 셈인지 국내에선 근 15년째 '글래디에이터의 감독'이라고 홍보가 되는 것 같은 분으로- 실제로 '엑소더스'의 영화관 홍보 간판에 그런 문구가 들어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글래디에이터 이후엔 01년 블랙 호크 다운 > 05년 킹덤 오브 헤븐(감독판) > 07년 아메리칸 갱스터 > 10년 로빈 후드 > 12년 프로메테우스 정도를 기억에 담아두었을 따름입니다. (한니발은 왜 빼? 라고 하시면 전 그로테스크를 싫어 해서...)
십몇 년 간이긴 해도 5편이나 기억에 남았으면 충분히 괜찮은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음...솔직히 천국의 왕국은 괜히 극장용 편집을 왕창 하셨다 욕먹었다손 치고 미국인 폭력배 이후엔 점점 미묘해지시는 것 같아서 좀 애매했었더랬습니다. 그런데도 아무튼 로빈이나 프로미티어스까지 위에 꼽은 영화들은 블루레이(이하 BD)로 소장하고 있습니다만 재생 빈도가 잦다고는 할 수 없네요. 물론 둘 다 나쁜 영화가 아닙니다만, 자주 다시 보고 싶을만한가? 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같은 액션물이라도 글래디에이터는 초장 전쟁 씬 외에도 마지막 씬- Not yet- 도 자주 돌려볼 정도로 곧잘 꺼내는데 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마션을 보기로 한 것은 순전히 시기와 장소 탓이다라고 할 수도 있었겠습니다. 곧 부티크 관에서 뭐 하나 볼까 > 어, 시간 맞고 자리 좋은 데 빈 게 마션이네 > 그럼 마션 보지 뭐 이런. 전 창작물을 보기 전에 다른 이들의 평이나 기타 주변 자료에 일절 신경쓰지 않는 주의다 보니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에 대해서도 딱히 아는 바가 없었기에 결과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요즘)스콧 감독 영화'라는 엷은 편견 정도만 가진 채 본 셈입니다.
감상 후에 든 생각은 우선 음... 내용을 따지면 우리나라라면 무인도 표류기 정도 스케일이 될 이야기가 헐리우드 대자본과 그 유명한 나사NASA, 거기에 어째 요즘 띄워주는 듯한 미국 이공계들과 결합해 화학 반응을 일으켜 65535배쯤 부풀어 나온 영화 같더군요. 무인도 생존기의 무대를 화성으로 옮기고 + 괜찮은 음악과 + 언제나의 (환기용)유머 + 휴머니즘(이라기 보단 가족애?) + 거기에 약간 있어 보이는 과학적 디테일(하지만 철저하게 설명하거나 보여주지는 않는)을 칵테일 하면 이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영상에서 인상 깊은 부분이라면...이 영화는 종종 1인칭 다큐 타입의 화면을 추구하지만 그 목적은 관객에게 '화성 (조난) 체험'을 시키고자 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역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 씨의 처지에 공감하여 미국 영화에서 곧잘 볼 수 있는 화두-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저런 물자와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이루어지는 것의 정당화- 를 (적어도 영화 보는 도중엔)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혹은 당연히 긍정하게 만드는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게 딱히 억지스럽거나 역겹거나 하지 않은 것도 오랜 세월 영화를 만든 감독의 역량인 것 같습니다.
종합하여 순수하게 감상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재밌는 부분은 재밌고, 감동적인 부분도 있었습니다. 시나리오도 딱히 말 안 되는 부분이야 없어 보이고(과학적 고증 이런 건 영화적 허용이라 논외로 치고), 편집이 좀 가미된 것이 의심되긴 해도 어이없을 정도로 잘라먹은 것도 아니고, 뭔가 악의적이라 느껴질만큼 깐깐한 시선으로 보려고 해도 영화 내용이 워낙 따뜻(?)하고 유머러스(?) 해서 그런 태도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고. 과학이란 무미건조한 디테일을 이렇게 포장하여 만든 것도 분명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괜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덤으로 좀 더 저속스런 표현을 곁들여 잡소리를 덧붙이는 게 허락된다면 '공돌이 짱!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마구 갈아 넣어! 이공계 만세! 영화'란 생각도 들었고.(웃음)
그렇지만 그래요...이 영화를 BD, 아니 미디어로 소장하고픈 생각이 드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글쎄 좀 애매하더군요. 종종 충분히 맛있게 잘 만든 요리인데, 먹고 나면 딱히 다시 먹고 싶은 건 아니다 싶은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만 제게 마션이란 영화는 그런 느낌입니다. 프로미티어스는 군데군데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서 다시 본다 치고, 로빈 후드는 나름대로 거창한(?) 재해석과 막판 대규모 전투가 맘에 들어서 사서 정말 어쩌다라도 다시 본다 치고...그런데 마션은 흠...개인적으로 평하고 BD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모든 점에서 괜찮았지만, 또 저렇게 골라서라도 먹을 만큼 다시 먹고 싶은 부분은 딱히 없었습니다. 이는 마치, 육식을 좋아하는 제가 정성스레 가꾼 질 좋은 채소와 풍미 좋은 소스로 만든 고급 샐러드에 대해 품는 감정 같은?
분명 양불량의 관점에서 볼 때도 양이고, 호불호의 관점에서 볼 때도 호에 가까운 데도, 소장으로 귀결될지 어떨지 확신하기 어려운 영화는 정말 오랜만입니다. 원작 소설은 과연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생기는데- 그걸 확인하는 건 좀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을 거리가 좀 많아져서... 이렇게까지 쓰고 보니 어째 박하다 싶은 느낌으로 이야기 했지만 실제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니 아직 안 보신 분이라면 한 번 봐두시는 것도 좋으리라 정도는 자신 있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이 참으로 애매한 마션 감상기는 여기까지.
PS:
부티크 관은 특별관 취급이라 표값이 좀 더 비싸지만, 실제로 감상해 보니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리 배치도 일반관에 비해 좀 더 여유가 있는 감(일반관이 이코노미 석이면 여긴 반 비지니스 석 정도의 너비와 의자 질을 확보했달까)이고 관객 시야 배려나 사운드 퀄리티도 일반적인 관에 비해 확실히 '편한 감상'을 계산하여 만든 느낌인 듯.
M2관이나 아이맥스 관처럼 어떤 하나의 강점을 큰 소리로 특화! 라고 주장할 정돈 아니지만, 나름대로 편하게 두어 시간 여가를 즐기는데 영화 감상의 초점을 두는 분께는 이 부티크 관도 괜찮은 선택일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CGV 골드 클래스는 (가격도 그렇지만, 객석도)좀 과한 느낌이고...이 메가박스 부티크 정도가 딱 취향인 것 같네요.





덧글
1. 스윙바이같은 부분은 사전지식이 없는 분들이 이해하긴 어렵겠다 싶더라고요
2. 영화의 분위기. 주인공이 심적으로 불안정함을 더 보여줬으면 좋았을텐데 묘사만 보면 진짜 유쾌한 것처럼 보여서(...)
3. 중국이 복선도 없이 너무 착하게 나와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어버린 점. 동맹국인 일본이나 EU도 아니고 중국이...?
원작 따라간거긴 한데 소설보다 너무 착하게 만들어놔서 할리우드에 중국계 자본이 투입된 영향인지... 싶었습니다.
뭐 이 정도네요.
음 그보다 부티크관같은 특별관을 그저 마케팅적 요소로만 보고 좀 회의적이었는데 이런저런 장점이 있었군요
저도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요즘 애니메이션 극장판들이 죄다 메가박스 단독개봉이라 마일리지도 쌓였고(..)
한편 원작 소설을 안 읽어봤지만 거기서도 중국 덕을 봤다고 하니까 그건 그런가 보다 합니다만, 스콧 감독은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는 밝은 미래를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내용상으로 별 흠결도 없고 노린 건지 부수적인 건지 중국 수익도 좋으면 아무도 우는 사람은 없을 테니...집 앞 영화관의 모든 관이 부티크 관이 되어버려서 곤란한 사람도 나름 있는 것과 대조적이죠.-_-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