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유포니엄 소리가 아주 약하게 들린다 개봉영화/TV,A/공연 감상

일전에 두 번쯤 [울려라! 유포니엄]이라는 쿄토 애니메이션(이하 쿄애니) 제작의 TV애니메이션에 대해 그 감상과 나름의 견해를 정리하여 포스팅으로 올린 일이 있는데, 슬슬 종결을 향해 가는 이 애니에 대한 감상의 마침표를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던 참에- 마침 이 애니의 12화에 대해서 일본에 거주중인 친구가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다며 안주거리로 삼더랬습니다. 타이밍 한 번...

친구와 메신저를 통해 나눈 이야기가 나름대로 길게 이어진 관계로, 간혹 그랬듯이 메신저 대화문을 옮기는 건 무리인 것 같고, 개중에 친구와 제 의견이 합치한 부분들을 중심으로 정리해서 포스팅을 해볼까 합니다. 덧붙이면 이 애니메이션의 최종화는 13화지만, 사실상 주제적으로는 12화에서 이야기 다 끝났다고 보는지라 여기서 감상을 매듭지을 생각입니다.

1. 무엇이 좋았는가?

일전에 8화까지 감상한 상태에서 전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이러한 견해를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12화는 거기서 언급한 '애매함' 중에서 적어도 몇 가지는 조금 수정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 요소는...

- 원작 소설에 없는 오리지널리티를 한껏 추구하는 한이 있어도, (말하고 싶은)'청춘'을 그린다.
- 이를 통해 주제의식을 부각하며, 쿄애니 특유의 연출력이 짧은 시간 안에 그것을 한껏 밀어 올린다.

이 작품의 주제는 <공부와 취주악과의 갈등 등 꿈과 우정에 대해 고민하는 고등학생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모양)이고, 적어도 12화 한 화에서만 따져보자면 의도인지 우연인지 몰라도 최소한 이 애니가 줄곧 그려왔던 아주 과장스럽고 과잉스러운 연출빨이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마침 잘' 밀어 올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애니에 대해 제일 처음 말씀드린 견해(링크)에서 전 이 애니의 연출이 지나치게 과잉스럽다는 감을 피력했는데 그 과잉스럽다는 감이 8화쯤에선 스토리와 별개로 혼자 폭주해 갔다면 12화에선 그 의도가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볼 때 이인삼각의 모양새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개중에서도 제가 2010년~2011년 경 이래- 대충 [빙과]부터- 쿄애니 작품에서 곧잘 인상 깊게 여겼고 때문에 칭찬했던 '(심사숙고가 깃든)광원의 연출'은 이젠 누가 봐도 명백히 와닿을 정도가 된 듯합니다. 고품위로 전달되는 영상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 이러한 연출을 고려하는 것으로 미루어 여러모로 쿄애니는 HD시대, 그리고 블루레이에 담기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줄 안다고 생각되며 다른 것을 떠나 이러한 점은 이 회사가 애니메이션 영상 제작사로서 노력을 경주한다는 점을 잘 알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쿄애니 작품은 꼭 방송뿐 아니라 BD로도 사서 보세요- 라고 까지는 제가 쿄애니 홍보담당 같은 게 아니라서 말하지 않겠습니다만.(웃음)


2. 무엇이 나빴는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이 12화가 분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목처럼 (최소한 저나 친구에게는) 유포니엄 소리가 아주 약하게 들리는 이유는 총 13화 분량으로 예정된 작품의 12화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 원작과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군데군데 추구했으면서, 왜 이제야 맘대로 (확실히 주제의식과 합치하는, 주인공의)'청춘'을 그렸는가.
- 연출에는 과하게 힘을 쓸 정신이 있었으면서 주제와 이야기에 대한 직간접적 안배는 왜 계속 모자랐는가

말하자면 12화는 그 자체로선 문제가 없지만, 이 작품 전체를 관조하면 12화가 오히려 괴리감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스토리적으로 볼 때 마치 합주에서 혼자 튀는 악기처럼 보는 사람을 좀 깜짝 놀라게 했다는 것이 그 괴리감의 원인입니다. 이 애니의 문제는 이전부터 계속 생각했던 것이지만, 단발단발의 장면적인 임팩트를 지나치게 추구해서 > 주제 및 스토리를 견인하는 것은 조금 심하게 말해 뒷전이고 > 연출이 연출에만 골몰한 나머지 수단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그게 12화에 와서야, 도무지 짝이 안 맞던 연출과 주제의 이인삼각이 간신히 같이 달리는 감이 생겼는데, 말하자면 한참 변죽만 올리다 마지막에 와서야 (작중의 쿠미코처럼)악기 유포늄에 아주아주 진지하게 입을 대 본 느낌이려는지?

문제는 원작 소설에서는 차라리 취주악을 통한 성취 같은 청춘보다 각자의 호감이나 관계에 대한 고찰을 더 진지하게 다루는 감이라 설령 그게 (사실은)트라이앵글, 실로폰, 캐스터네츠 같은 이야기라 해도 별로 상관 없어 보이는 식으로 흘러 갔다는데- 원작 소설을 읽어 본 친구의 말로는 그렇다는 모양인데- 애니메이션 쪽은 지금까지는 (사실은)트라이앵글, 실로폰, 캐스터네츠에 과도한 연출이란 일종의 마이크를 대서 열심히 중구난방 울리다가 끄트머리에 와서 유포늄이 그 특유의 저음을 뿌우~ 하고 드러낸 것이라는 점입니다.(유포'니엄'과 유포'늄'을 구별해서 쓰는 것은 이 작품과 한 악기의 구분을 짓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앞서 워낙 마이크까지 대가며 쨍쨍 울려댄 고음들이 귓전에 남아서 유포늄 소리는 영 희미하다- 대충 이런 감상이 되겠습니다.


3.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가?

이 항목에서 특히 위의 스크린 샷을 친구에게 요청한 이유는 '달에 전력으로 손을 뻗어보자!'라는 언급이 나올 때 어쩐지 [천원돌파 그렌라간]이라는 작품이 생각났고, 그때 제가 이 울려라! 유포니엄에서 줄곧 느껴온 괴리감이 무엇인지 정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포니엄의 (일단은)주인공인 쿠미코라는 여자아이는 그렌라간의 주인공 시몬과 비슷한 타입입니다. 그렌라간 11화 이전까지의 어린 시몬과 말이지요. 말하자면 할 땐 하지만 어정쩡하고 목표의식이 애매한, 남에게 달라붙어 끌려다니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참고로 이 평가는 그렌라간 6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말하는 시몬에 대한 평가에서도 언급되는데, 6화의 스토리적 진가는 얘들의 살색 면적 넓이가 아니라 이 대화에 있었다고 봅니다. 아무렇지 않게 시청자들에게 시몬이란 캐릭터의 현 주소를 평가하여 각인시키고, 그럼으로써 11화에서 그리고 이후 시몬의 모습을 보다 극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기능하게 하기에.)

그런 시몬이 11화에서 '주인공다워지는 것'이 뜬금없지 않고, 또한 무엇보다 멋진 이유는 연출에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야기의 흐름과 맥에 일치하여 11화에서 제대로 터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때까지 줄곧 카미나라는 캐릭터와의 관계에 집중하여 끌어왔고, 그 영향이 크고 한결같음을 끊임없이 강조했으며, 요코나 니아 같이 어느정도 소위 캐릭터 팔이 노선이 깃든 여성 캐릭터를 함께 내세우면서도 어디까지나 보조역으로 한정하여 비중을 극적으로 할애하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시청자들이 시몬-카미나의 관계나 작품 스토리의 핵심(시몬이란 캐릭터의 변화, 그 변화를 통한 인류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서 주제 의식의 피로)을 확실하게 잡아서 이야기를 더듬어 갈 수 있도록 몰아왔고 그 단 하나의 굵은 도화선을 통해 제대로 카타르시스의 폭탄이 터진 게 11화가 되었습니다. 그렌라간 11화가 멋진 건 열혈 로봇 만화 특유의 필살기 기가 드릴 브레이크나 가사가 특히 상황에 잘 어울린 삽입곡 Happily ever after 뿐만이 아니라 이 스토리적인 폭발이 있었기 때문이며, 제가 그렌라간을 마음으로 좋아하게 된 이유도 이 화가 계기입니다.

그에 비해 울려라! 유포니엄은 가늘고 긴 도화선을 가진 작은 다이너마이트 여러 개가 묶여있는 감인데, 정작 그 도화선들이 대부분 타다 말고 그럭저럭 하나의 도화선이 남아 어떻게든 한 개는 터져주긴 했지만 화력이 부족하여- 말하자면 스토리적으로 폭발감의 카타르시스가 부족한 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이때까지의 과한 연출이 마치 물을 끼얹는 느낌으로 작용했다는 점도 있을 것인데, 그나마 12화의 달려가는 연출은 앞서 언급했듯 볼만한 부분이라 생각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그것은 쿠미코가 그렇게 달려간다는 감을 전하는 것이지 시청자가 함께 달려가게 하기에는 지금까지의 스토리 견인력이 약합니다. 그리고 이제 13화의 콩쿨에서 (예정대로)관서 대회 진출이 결정된다 해도 그것은 '그냥' 기가 드릴 브레이크일 뿐, 스토리적인 카타르시스나 주제 의식의 전달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입니다.

주제적으로 이 애니는 12화에서 사실상 종결을 지었습니다. 문제는 12화'에서만' 이야기하고 종결지은 감이라는 것이고 여기까지 온 길은 비유하면 마치 시험까지 2주쯤 남은 상태에서 한 열흘쯤 아주 정열적으로 놀아 제끼고 한 이틀만에 벼락치기 공부하는 모양새입니다. 노는 것도 정열적이면 (부모나 선생의 성격에 따라서는)호감을 살 수도 있고, 앞서 언급한대로 12화는 좋았으며 13화도 아마 별 일 없으면 한껏 좋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래서 결과물로 디밀어진 전체 평균 시험 점수는 '이게 최선이야?' 라고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제 남은 마지막 화, 그러니까 13화에서 아무리 멋진 모습과 그동안 꾸려 온 이야기를 전부 그러모으려는 시도를 한다 해도 그것은 때늦은 울림일 뿐입니다. 하려면 진작에 단계를 밟아가며 했어야 하며 그게 이야기의 완성도입니다.


4.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애니메이션은 취주악부라는 대인원의 합주를 소재로 삼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각본과 콘티 단계부터 보다 많은 캐릭터들의 드라마를 어떻게든 그려내는데 상당히 욕심을 부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작에서나 애니메이션에서나 주인공 쿠미코라는 캐릭터가 마치 1인칭 주인공과 관찰자를 왔다갔다 하는 듯한 스탠스를 가진 애매한 주인공이라는 이유도 여기에 일조했다고 생각되지만, 하여간 바로바로 생각나는 것을 열거해 봐도 부장과 부부장의 어긋남, (담당 고문이자 지휘자인)타키 선생님 나름의 언행과 그 고충, 졸업반 상급생들의 고뇌(?), 레이나의 복잡한 호감도 사정 등등 꽤 많습니다. 뭐, 좀 더 꼽자면 슈이치를 둘러 싼 삼각관계 같은 것도 포함이 되려나...당사자 중 하나인 쿠미코가 뜨뜻미지근 해서 별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

물론 이들은 이들 나름대로 어떤 식으로건 주인공 쿠미코라는 캐릭터가 좋아하는 유포니엄에 매진하여 나름의 청춘을 구가할 수 있도록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문제는 끼쳤을 것입니다- 라고 남의 일처럼 추정할만큼 시청자로 하여금(일단 저와 제 친구 총 두 사람의 시각에서 볼 때) 명백하게 연결짓기 어렵게만 나온다는 데 있고, 이는 이런 파편화 된 에피소드 들이 주제 의식을 클리어하게 보기 어렵도록 지나치게 화려하게 치장한 데다가 그것을 보고 들은 주인공 쿠미코가 어떤 결론을 낸다던가 최소한 어떤 식으로 변했다던가 하는 것을 작품이 직접적으로 디밀어 주지 않는 데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엄밀히 말해서 12화 한 화 내내 보여준 쿠미코의 결의는 거의 순전히 (그나마 이 애니가 가장 그 영향력을 강조한)레이나와의 관계에서만 자아낸 것이지 딴 건 모두가 헛도는 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잠시나마 진학 때문에 취주악부를 포기한 아오이와 대화를 좀 넣음으로써 마스킹을 시도해 보지만, 그 외의 모든 헛도는 것들 하나하나는 연출과 장면 구성으로 멋지게 & 있어 보이게는 해도 그 순간이 지나고 잘 생각해보면 그것들이 과연 주인공인 쿠미코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는지 그래서 스토리 및 주제의식과 최종적인 연결력으로 작용했는지 여부는 도무지 짚어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쿠미코가 주인공이 아니라 그냥 여러 캐릭터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면 각자의 사정을 다양하게 그린 것이고 이를 통하여 청춘 군상을 그린 군상극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그래서 각자 나름의 사정과 고민이 있는 건 알겠지만, 그것이 또한 모두 합치되어 특별난 비중을 갖도록 시청자를 설득했냐면 글쎄요? 그럴려면 우선 쿠미코에 대한 연출적 안배를 소꿉친구 슈이치 수준으로 낮춰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실제로 원작에서나 이 애니에서나 쿠미코는 '일단 주인공'이기에 그렇게 될 수는 없었던 모양이고 그 결과 유포니엄에서 보여지는 섬세한 연출을 동원한 많은 개개인의 이야기는 '많고 조밀하긴 하지만', '그게 진지하게 어떤 결론이나 최소한 주제 의식과의 합일'되는 것이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울리는 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각 파트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연출적)공을 들였지만 정작 이야기적 합주는 생각하지 않은 중구난방의 하모니랄까.


5. 그럼 어떤 대안이 있었겠는가?

이런저런 많은 인간 관계를 그리고 서로서로 영향을 끼치는 복잡한 구조를 제대로 엮어내려면 명백히 이야기를 쓰는 사람의 구성력과 내용을 풀어놓을 분량이 필요한데, 이 애니는 능력은 어쨌거나 일단 분량이 부족한데도 아무래도 과욕을 부린 감입니다. 이건 원작이 있는 애니이고 그 원작 소설의 흐름이 많은 캐릭터를 그려내는데 노력한다 해도 그건 서술 분량이 충분한 소설에서 허용되는 이야기일 터이고, 이미 요소요소에 오리지널을 한껏 심어서 (소설 1권 이후 후속권에서 해결되는)원작의 복선 같은 건 대부분 잘라내는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했다는 애니메이션이- 이 부분도 역시 원작 소설을 읽어 본 친구의 전언- 위와 같이 다양한 인간 드라마를 보여주려는 구조를 취했다는 것은 스스로 텔링 난이도를 올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유포니엄의 애니화는 오로지 소설 1권만을 온전히 옮기는 것으로 각본 회의 단계부터 결정된 모양이고 그래서 그러기엔 아무래도 13화 정도면 이것저것 손 대기에도 분량이 충분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 욕심을 부린 모양인데, 결과물은 글쎄...

이 애니가 (여러)캐릭터들의 심리를 그려가는데 주력했다는 건 이전에도 인지한 사항이지만, 그 심리를 그리는 것이 주제와 합치하고자 하는 정도가 낮다는 것은 결국 결정적으로 개선된 것이 없습니다. 12화에 와서, 이제 와서, 잘하고 싶다는 소리 하나로 때우려는 게 그 개선이라면 미안하지만 세상에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방황하는 청춘이 결국 하고픈 바를 떠올리고 매진하게 된다는 걸 그리고 싶었다면 글쎄, 차라리 쿠미코 같은 타입이 아니라 더욱 극적이고 만사에 부정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이 애가 주제와 일치하는 심리적 변화를 향해 가는 과정을 집중하여 집요하게 보여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타고 난 재능은 모르고, 그런데 가난이나 부모의 불화 같은 주변 환경에 움츠리고 있다가, 친구들과의 만남과 여러가지 일을 계기로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매진하지만 잘 안 되고, 한 번 좌절하지만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서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 그런 이야기를. 묘사하는 데 어려울만큼 거창해 보인다고 하셔도, 이게 그렌라간이 11화만에 그려 낸 시몬의 모습입니다.

물론 울려라! 유포니엄의 이야기 하나하나 들이 제각각 어떤 사람도 동조하지 않을만한 이야기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보다 많은 시청자가 함께 마음으로 인정하고 동조하는 주제 의식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전하는 게 아쉬웠음에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 대안이 위와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한 예에 불과하며 유포니엄의 이야기들을 가지고도 앞서 언급한 '합치력'을 부여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그림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동조하게끔 만드는 것이며, 이것은 이야기의 방향성 차이 같은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 표현력의 완성도를 통해 얻어지는 부분을 논한 것입니다. 즉, 작품의 양불량(良/ 不良)을 따질 수 있는 완성도를 높임으로써 호불호(好/ 不好)의 호를 보다 더 끌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6. 결산: 쿄애니의 숙제

그러고보면 울려라! 유포니엄 12화 속의 위 스크린 샷과 같은 장면들은, 이 TVA가 가진 세일즈 포인트이자 한계를 어떤 의미에선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캐릭터가 보기 좋아서 흥미를 갖고 이 은근한 고혹적인 모양새에 이끌린 수요를 창출하는데 이 TVA는 꽤 신경을 쓰고 있는데, 하지만 저 장면이 12화 속의 '이야기'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데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면 저나 친구의 IQ나 EQ 한도 내에서는 와닿는 게 없었습니다.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쿄애니는 일련의 영상에서 멋진 영상미를 보여주는 게 많으며 이 장면도 개중 하나입니다. 다만 이것들이 온전히 이야기와 관련이 있냐면 그건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이야기적으로는 1분 1초를 낭비하는 중입니다.

'연출'이라 한 마디로 뭉뚱그려 말하고 있지만 세세하게 말하자면 온갖 제작상 안배의 집합체인 이러한 요소들은, 이야기를 보조하여 이야기가 빛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지 그 자체가 튀려고 하는 순간 소위 '연출 팔이'가 됩니다. 물론 연출 팔이는 주로 여성 캐릭터를 집중적으로 꾸미는- 노골적으로 말하면 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으로 시도하는 소위 캐릭터 팔이에 비해 긍정적인 평가를 얻는 경우가 훨씬 많으며, 쿄애니는 여성 캐릭터를 되도록 얌전하게 꾸미고 배경이나 상황 연출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긍정적 평이 상업적 성공으로까지 연결된다면 상업 창작물 제작사로서는 그 본분을 다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나쁘게 볼 요소는 아닙니다. 또한 영상물 범람의 시대에 단발단발 임팩트에 열광하는 대중이 문제인 것도 아닙니다. 특히 단발 강조 연출에 익숙한, 현재의 1~2쿨 안에 승부 봐야 하는 심야 애니 트렌드와 예산과 시간 속에서 이는 상업적으로 통하는 선택이고 쿄애니 나름의 진가라고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연출 팔이가 노골적이고 나름 순수한(?) 캐릭터 팔이에 비해 오히려 작품적으로는 해악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캐릭터 팔이는 때에 따라선 '(그 이야기를 끌어간) 캐릭터'라는 기억은 남게 만들고 때문에 어떤 식으로건 이야기도 덤으로 기억하게 해준다는 장점이라도 있습니다.(이야기랄 것 자체가 없는 작품이면 하다못해 캐릭터라도 남고) 하지만 연출 팔이는 연출 그 자체에만 흥미가 갈 뿐 이야기를 잊게 만듭니다. 연출을 통해 이야기를 견인한 게 아니라 연출 혼자 튀어 이야기를 가리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연출 팔이는 애니메이터 지망생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순수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시청자에게는 때로 감상을 방해합니다.

전 예전에 [타마코 러브 스토리]에서 쿄애니의 성장을 보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번 유포니엄을 볼 때 쿄애니는 아직 '스텝 업'을 하고 있을 뿐이지 진정한 '레벨 업'을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순전히 연출에 걸맞는 주제를 (아무래도 우연히)잘 골라냈기에 그게 가능했다고 부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쿄애니라는 회사는, 기술적으로는 현재 (적어도 일본 애니 레벨에서는)수위급 반열에 이른 이 연출력을 스토리와 합치하여 터뜨려 준다면 진정한 레벨 업을 할 수 있고 그렇게 인정할만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쿄애니는 언제 다시 제대로 된 '이야기'를 얻을까요? 연출과 작화에만 신경쓰지 말고 각본가를 좀 길러보면, 그리고 그 각본가에게 이야기의 재량권을 부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PS:
여담이지만 이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들은 곡은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의 서곡입니다. 일본에는 地獄のオルフェ라는 프랑스어 원제 그대로의 해석으로 알려진 오페레타인데 울려라! 유포니엄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제게 남긴 것 중 하나는 오랫동안 안 보았던 이 오페레타의 영상물을 다시금 돌려보겠다는 생각이 들게한 것도 있겠습니다. 아, 우리나라에서도 요즘에는 원제인 '지옥의 오르페우스'로 더 잘 회자되는 것 같더군요.


덧글

  • ㅇㄹㅇㄹ 2015/06/26 10:55 # 삭제 답글


    12화 들어서 처음으로 내가 주인공이다. 를 외친 쿠미코였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쿠미코의 시선을 빌려서 보여주는 군상극이기도 하면서 쿠미코의 성장스토리라고 보기 때문에 굉장히 좋게 느껴졌네요. 마치 타마코 마켓을 11화까지 한 후 타마코 러브스토리가 12화에 들어간 느낌이랄까요. 1화부터 (확 느낀 건 8화부터) 11화까지 있었던 모든 것들, 특히 레이나에게 자극받은 쿠미코가 처음으로 자기 벽에 도전한 건 어떻게 보면 급작스럽지만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오이와의 대화와 언니가 음악을 포기한 사정, 그리고 결국 파트에서 제외되는 모습이 나온 것은 밝아보이지만 실제로는 좌절과 실패로 가득찬 이 애니메이션 다웠고요. 거기에 탈락한 쿠미코가 갑자기 슈퍼쿠미코가 되어서 뛰어난 연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는 유포니엄을 좋아한 것이구나,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는 것이 틀린 게 아니구나 라는 정신적인 각성(?)하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애니메이션은 사춘기 시절 "특별함"의 추구와 "현실의 벽"을 보여주고 싶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중학교 때의 사건과 언니의 수험으로 인한 음악 포기로 인해 음악에 대해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망하던 쿠미코가 특별해지고 싶어하는 레이나를 만나서 달라지는 (Girl Meets Girl) 스토리 라인 위에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실패들(1학년의 좌절, 초심자의 좌절, 수험생의 선택, 자기자신에 대한 불만, 사랑의 실패, 능력의 모자람, 엇갈리는 마음 등등)을 집어넣으면서 이야기를 진행하였습니다. 거기에 특별해지고 싶어진 주인공조차 아무리 간절해도 짧게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현실적인 결과까지 더해졌지요. 이 애니메이션에서 주요 등장 인물 중에서 현실의 벽에 부딪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상처를 회피하려고 하는 아스카빼고는 타키 선생조차 부딪치고 상처입었죠. 이런 부딪침들이 청춘은 빛나보이지만 단지 빛나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메세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13화에 있을 (아마도 "다메킨"이 아닌 관서대회 진출할 수 있는 금을 획득하는) 성공에 더 많은 걸 느끼게 하겠지요.

    ps. ost 청취 동영상이 나왔는데 8화에서 레이나가 쿠미코에게 특별해지고 싶다고 고백할 때 나온 곡의 이름이 "의식의 발아" 더군요. 8화를 기점으로 쿠미코의 태도와 행동이 바뀐 걸 보았을 때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ps2. 콩쿨 자유곡인 초승달의 춤은 오리지날 곡이지만 악보 가지고 컴퓨터로 연주한 걸 들어보니 왜 이 곡이 이 극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곡인지 알게 되더군요.
  • 城島勝 2015/06/26 18:21 #

    말씀하신 바가 이 애니의 스토리에서 추구한 나름의 청춘이었다는 것 역시도 인지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12화가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있기도 했고, 본문에서 언급했듯 유포니엄의 이야기 하나하나 들이 제각각 어떤 사람도 동조하지 않을만한 이야기라고 하지는 않으며 저 또한 말씀하신 부분들에서 부분부분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본문에서 말씀드린대로, 지나친 연출적 포장으로 인해 그러한 현실의 벽이나 좌절 같은 것을 와닿게 하기에 너무나 별나게- 특별함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꾸며졌다는 것과 또한 그러한 인간 군상들의 개개의 이야기가 다들 파편화되는 것입니다. 아주 엄밀히 말하면 말씀하신 사항 중에서 쿠미코가 레이나를 만나서 달라지는 것만이 이 작품의 스토리에서 가장 의미있게 제시된 주제 의식과 합치된 '현상'이고 나머지 사항들은 모두 일종의 '변죽'입니다. 서로서로의 연결고리 부족으로 인해 시청자가 굳이 의식에서 맞춰넣지 않으면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12화에 와서 내가 주인공이야 라고 외쳤다 말씀하시는 쿠미코- 적어도 '외쳤다'라는 것에는 저도 동의하는데- 는 연출면에선 그전에도 늘 때때로 중심으로 밀어 올려졌으며, 그 쿠미코가 다른 이들의 사례에서 무언가를 얻는 명확한 묘사건 최소한 대사 한 줄이 없다는 점은 연출과 스토리의 주제 의식이 서로 엇박자를 울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개인적인 심증을 굳히게 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12화 때문에 이 애니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이 이런 분위기로 맺어진 것이기도 하고.

    진짜 현실에서라면 이와 같이 모두가 개별화 된 이야기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주제 의식을 갖고 인물들을 다루어 하나의 완결된 결론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창작물에서 이와 같은 노선을 취한 것은 작품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깎는 행위에 가깝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물론 작풍에 따라, 작가가 쌓은 그러한 파편마저도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은 시청자의 권리이자 능력이지만 이 애니의 연출을 비롯한 제작의 방향타가 그것을 방해하였다는 것 또한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 조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한 수 정도 더 짚자면 지금 해석하신 작품의 모양새를 보다 더 살리자 했다면 12화에서 쿠미코가 외쳐야 했던 것은 '잘하고 싶다'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였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부연하면 역시 쿄애니가 제작한 '빙과'를 낳은 [고전부 시리즈]- 이 시리즈 1권 제목이기도 하고- 가 나름의 '청춘'을, 거기다 최소한 유포니엄 처럼 학교 취주악부로서 콩쿨을 준비한다는 식의 알기 쉽게 제시하는 어떤 목표 주제도 없이, 얼마나 의미있게 잘 전달하는지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고전부 시리즈는 일견 의미 없고, 파편인 것 같은 이야기들이 결국 해결되는 미스테리 처럼 차례차례 작용하고 그러모아져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은 바를 선명하게 드러내 주며 개인적으로 고전부 시리즈를 굳이 추리물이라고 부른다면 작중의 소소한 퍼즐놀이 같은 추리 소재보다 오히려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 자체가 더 추리물스럽게 단계를 충실히 밟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쿄애니가 애니화를 하였음에도 이러한 원작의 어떤 분위기와 방향을 너무 훼손하지 않았다는 게 애니메이션 [빙과]가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뭐, 굳이 말하면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편의 애니화는 별로 마음에 안 들긴 했습니다만.(웃음;)

    PS: OST에 대한 말씀,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쿠미코의 태도와 행동의 변화는 8화를 기점으로 잡기엔 이후에 또한 변죽이 너무 많아서, 반드시 그때가 아니라고 할 수야 없지만 아무래도 일러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 ㅇㄹㅇㄹ 2015/06/26 19:39 # 삭제

    빙과가 특별한 행동 목표 없이 청춘을 잘 보여줬다는 것에는 동의하나 쿠미코가 다른 이들에 사례에서 무엇가를 얻었다는 묘사가 없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2화부터 아오이의 말에 이끌려서 레이나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했고 이는 4화에 나츠키 선배에게 먼저 같이 연습하자는 제안을 하는 걸로 이어졌습니다. 5화에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통해서 명확하게 중학교 시절과는 다른 스타트를 끊었다는 이야기를 독백을 통해서 보여주기까지 했고요. 7화에 있었던 아오이의 퇴부는 그 당시에는 3학년 3인방의 관계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12화 들어와서는 수험 때문에 음악을 그만둔 언니하고 연관되어 그 불안한 마음을 오밤중에 유포를 부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10화의 나츠키 선배와의 맥에서의 대화는 쿠미코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음악에 대해서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이유를 희석해주었고요.

    특히 이런 변화는 8화의 레이나와의 합주 후에 더 명확하게 보입니다. 9화 시작할 때 연주가 좋아졌다는 저음부 내의 평가를 받았을 때나 오디션의 난제를 극복할 때에 레이나와의 유대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11화에서 사랑의 고백 되돌리기도 8화의 배경설명 없이는 의미를 찾기 어려웠지만 8화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죠. 그리고 1화의 쿠미코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레이나에게 박수치기도 한 것을 보았을 때 12화에서 그렇게 특별해지고 싶어하는 쿠미코의 모습이 단절되서 나타난 건 아닌 것같습니다.

    쓰다보니 글 솜씨가 저열해서 공격적인 느낌이 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주인분의 집에 개인적인 욕망을 쏟아부은 것 같아 다시 죄송스럽네요.

    ps. 12화의 잘하고 싶다라는 쿠미코의 대사를 한 쿠로사와 토모요에 따르면 음향감독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모르지만 분한 마음에 뭔가 분출하고자하는 기분을 보여주라는 연기를 요구했다고 하더군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못하고 엉망진창이 된 쿠미코를 보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 城島勝 2015/06/26 21:52 #

    아아, 아닙니다. 제 졸문을 진지하게 읽어 주시고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말씀을 해주신데 대해 오히려 감사드려야 할 일이지요.^^

    저는 다만 쿠미코란 캐릭터가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바들 중에서 결정적으로 쿠미코의 행동거지로 이어져 주제 의식으로 연결된 건 결국 레이나 뿐이라 생각하는 것이고 이는 본문에서 이미 말씀드린대로 '그나마 살려 놓은 연결성'이며 그나마 터져 준 다이너마이트 한 발이라는 입장입니다. 중요한 건 시청자에게 끼치는 카타르시스의 임팩트인데, 말씀하신 다른 연결들은 그냥 '행동'을 빚은 것뿐이고 카타르시스를 이끌어 내는 '결론'을 가져온 게 아니라는 것이 제 의견의 핵심이지요. 아울러 그 행동으로조차 이어지지 못한 다른 에피소드들에게 다들 과도한 연출을 쏟아부어 시청자의 눈을 지나치게 흐린다는 것이 문제라는 견해입니다.

    12화의 그 '잘하고 싶다는 발언'에 그러한 연기 지도가 있었다면 확실히 그 발언의 의도를 살리는 감으로 잘 연기되었다 싶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러느니 애초에 각본 단계에서 '난 무얼 해야하지?'라고 외치도록 쓰는 게 훨씬 더 나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음향 감독이 그렇게 말한 것으로 미루어 연출 레벨에서 알고 있던 이 스토리 핸들링의 맥을 각본팀에서 몰랐다는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그렇다고 연출팀이 아무 책임없이 이 작품을 잘 끌어왔다는 건 아니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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