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놀라운 일이 제법 많이 일어났는데 마지막 달인 12월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서울문화사가 소설 [마리아 님이 보고 계셔] 36권을, 35권을 정식 발매(관련 포스팅 링크)한지 약 5개월 만인 12월 1일에 발매했지 뭡니까. 정말입니다. 서점에서 찾기는 어려우시겠지만(웃음) 정말로 발매되었어요. 이 사람, 믿어 주시길.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이 소설 시리즈는 일본내 2012년에 현 시점 마지막 단행본(한국판 권 수 기준 37권째가 될 페어 웰 부케)이 나온 이후 안 그래도 텀이 많이 벌어지던 한국내 정식 발매 속도가 더 느려져서, 이전 35권 발매 당시 포스팅에는 정발판 37권이 브라질 올림픽 기념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상마저 서슴없이 했을 정도입니다. 마리아 님이 보고 계셔와 브라질 올림픽이 무슨 관계냐고 하면 둘 다 가톨릭과 얼마간 관계가...농담입니다만.
그렇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지나치게 빠르게 정식 발매판이 나온 '스텝'은, 작가 후기의 작가 말마따나 산백합회의 '산' 자도 나오지 않으며,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요 화자인 후쿠자와 유미의 '후'도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35권 '마이 네스트' 보다 훨씬 더 시리즈와 유리된 모양새이기에 일본 원판처럼 표지에 권 수가 기재되지 않은 쪽이 훨씬 어울린다 싶은 내용입니다.(일본판은 부제가 없는 첫 번째 권을 제외하고 모든 단행본에 부제만 붙었으며 따로 권 수 표기를 하지 않습니다.)
시덥잖은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 '스텝'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이 편은 본래 Cobalt 2010년 7월호에 연재 된 단편을 대폭 가필하여 단행본화 한 것으로 이는 이 시리즈의 근간인 유미-사치코 편 완결이라고 작가가 공언한 '헬로 굿바이'(정발판 기준 33권) 이후 발매 된 단행본들이 공통적으로 과거 별도 연재 된 단편을 모았거나(리틀 호러즈, 페어 웰 부케) 기존 단편 가필집(마이 네스트, 스텝)인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만 스텝은 앞서 언급한대로 시리즈의 주요 시점인 유미의 재학 중 시간대와 완전히 유리된 시점이기에 말하자면 기존에 익숙한 상황들과 전혀 관계가 없어 이런 수록 방식이 더 득을 본 느낌인 듯.
그 한편으로 '스텝'의 특이한 점은 이야기 전개를 두 사람의 주역을 내세워 각각의 시점에서 같은 일을 교차로 서술하는(1인칭 주인공 시점이되, 그 1인칭인 두 사람이 순서대로 서로의 시점에서 서술) 방식으로 펼쳐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이전의 마리아 님이 보고 계셔 내용 중에서도 종종 사용되었지만 아예 단행본 한 권을 채울 정도로 길게 사용된 건 이 권이 처음이자 현재로서는 마지막. 다만 이 방식을 통해 '스텝'은 본래 이 시리즈가 품은 지향점(이라고 생각되는 바)인 [일본식 여고생 일상물에 작가 나름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간 관계나 소통의 필요성에 대한 묘사를 가미하자]는 취지를, 특히 후자에 좀 더 무게를 두어 자못 그럴듯하게 구성해 냈다는 점에서, 가급적이면 한 번쯤은 더 이런 형태로 유미를 비롯한 익숙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어 줬으면 하는 바람도 들게 합니다.
종합해서 말하면 '스텝'은 확실히 마리아 님이 보고 계셔 시리즈 단행본이면서도 거기에서 다소 유리된 한 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봐 온 독자들에게 아주 익숙한 예의 도입부 서술은 그대로입니다만 그 도입부 서술에서조차 다른 권과 다른 부분이 한 군데 있으며(그런데 정발판에서는 이것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것은 후술) 작품을 감싼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부분들도 산재합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군데군데 품절된 권들이 있어서 현 시점에서 시리즈 모든 단행본을 모으는 게 불가능한 한국 정발판 마리아 님이 보고 계셔 시리즈에 뒤늦게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면 딱 한 권만 산다는 전제 하에 권할 수도 있는 한 권이기도 합니다. 마리아 님이 보고 계셔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한 권짜리 소설이니까요.
끝으로 덧붙이면 이번 권의 역자는 34권부터 번역을 담당한 분이 그대로 속투했으며 번역 정도는 여전히 별 흠잡을 데 없어 보입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으니, 먼저 표지 커버의 재질이 이전 35권에서 한 번 바뀌었는데 이번 권에서 다시 1~34권의 그것으로 복귀했습니다. 이게 왜 아쉽냐면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전과 유리점이 있는 내용상 차라리 이 '스텝'만 재질이 다른 커버였다면 상당히 센스가 있다고 평해줄 법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점이고 그렇다고 35권이 재판될 리도 없기에 전 권 수집자 입장에서는 이 애매함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다음으로는 오타. 일단 한 번 통독해 본 바로는 총 세 군데에 걸쳐 단순 오타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보다 자못 심각한 것은 전술한 도입부 서술의 변경점을 반영하지 않은 점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이 시리즈의 도입부에는 늘 '(전략)...시대가 변하고 메이지 이후 연호가 세 차례나 바뀐 오늘날에도...(후략)'라는 서술이 있는데, 일본 원판에는 바뀐과 오늘날에도 사이에 '헤이세이'라는 연호가 명기됩니다. 즉, 일본 원판에는 '연호가 세 차례나 바뀐 헤이세이의 오늘날에도' 라고 하여 이 시리즈의 주요 시간 배경이 헤이세이(서기 1989년 부터 사용되는 일본의 연호)임을 명기해 왔습니다. 물론 정발판에서 헤이세이가 빠진 것은 발매 국가를 감안한 의도적인 생략일 것이며 이는 정발판 1권부터 일관적으로 그랬기에 이게 문제라는 것이 아니고.
문제는 이 '스텝'에 한해서는 도입부의 저 서술이 '연호가 두 차례나 바뀐 쇼와(1926~1989까지 쓰인 연호)의 오늘날에도'입니다. 이 문구를 통해 이 편의 시간대가 시리즈 주요 시간대와 유리되었음을 확실하게 밝히고 시작하는데 정발판에서는 1~35권과 마찬가지로 '연호가 세 차례나 바뀐 오늘날에도' 입니다. 아무래도 번역 단계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도입부 번역을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해버려서 생긴 일이 아닌가 의심되지만 하여간 이때문에 작가의 작지만 배려라 할만한 부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누구의 실수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런 실수는 없어야 할 텐데 아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 시리즈물의 정발판이 가진) 궁극적인 문제는 군데군데 이가 빠지듯 시리즈 중 몇몇 권이 품절/ 절판되어 중간중간 어떤 사정으로 발매 타이밍을 놓쳤거나 뒤늦게 이 시리즈에 관심이 생긴 분들께서는 일본어 원판 구매 이외에 전 시리즈를 갖출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권을 비롯하여 종종 눈에 띄던 오타들도 바로잡고 그 외 이런저런 자잘한 문제도 수정할 겸 재판을 한 번이라도 더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서울문화사가 그럴 출판사냐고 한다면 글쎄...정말로 마리아 님이 보고 계셔도 애써 무시할 것 같다는 생각만 드네요.
덧글
1~24까지는 사기는 했는데, 그 이후로는 타이밍도 놓치고, 절판상태라 신품은 구하기도 힘들고,
그냥 포기 했습니다.
오타나 오역은 정보 찾으면은 그래도 감수는 가능한데, 진짜 절판은 방법이 없더군요.
번역판은 24까지 그냥 멈추고, 처음부터 원판으로 다시 구입할까 생각중입니다.
근데 정말 전권 재판 한번만 다시 해줄 수 없나 싶네요ㅠㅠ
군대가기 전에 어정쩡하게 중간에서 사다 말았더니 그 동안 죄다 절판... 원서로 구하려고 해도 국내 사이트에는 없는 경우가 있더군요. 진짜 해외직구라도 해야되나(···)
한편 원서라면, 한국에서는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서점에 주문하시면 물건 들어오는데 좀 시간이 걸릴 수는 있어도 구입 자체는 별 문제가 없으실 겁니다. 조급하시다면 아마존 저팬 등지에서 구입하시는 것도 괜찮은데 문고본이긴 해도 사십여 권 가까운지라 배송료가 만만치 않아서...혹 일본에 가실 일이 있다면 중고 서적 거래 매장 등에서 잘 찾아보시면 상태 좋은 중고를 저렴하게 시리즈 전체 다 구할 수도 있겠으나 들고 오시기가 좀 만만찮을 수는 있겠습니다.
근데 절판크리를 먹으면 그건 별 의미가 없어지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