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문화 산책: 고메이494, 풍월당 취미

어제, 토요일에는 친구의 권유로 압구정 산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압구정은 오래 전부터 들르는 음반 가게가 있어서 제가 사는 동네와 강남역 근처를 제외하면 제게 가장 친숙한 곳입니다. 여기에다 점차 서울에서 게임센터가 사라져가던 와중에 꽤 재미있는 게임을 많이 들여놓은 게임센터가 하나 있었기에- 지금은 문 닫았지만- 가기도 했었고. 그 이외에도 이곳은 맛집들도 많은데 그 가격대도 낮은 곳부터 높은 곳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한 곳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해보기 좋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제게 압구정은 음식 문화와 오락 문화의 메카쯤 된다 하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가 가고 싶어했던 이 날의 메인 목표는 로데오 거리 건너편 한화 갤러리아 백화점 지하에 있는 고메이494(gourmet494) 라는 푸드코트입니다. 푸드코트는 어느 백화점에나 대개 하나쯤은 있는 것이긴 합니다만 이곳은 꽤 특이한 편이라 저도 그 명성을 오래전부터 들었더랬습니다. 다소 웃기는 건 제가 그 명성을 제일 처음 들은 곳이 일본이라는 것이고- 일본에서는 '구루메494' 라고 발음하는 이곳에- 처음 간 건 이 친구의 권유 때문에 그러니까 어제가 처음이었다 이런 것입니다.

고메이494 홈페이지. 이곳은 간단히 서술하면 갤러리아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 + 식품 코너가 합쳐진 공간입니다만 일반적인 푸드코트가 담배라면 여기는 쿠바산 시거 쯤 되는 느낌의 공간이고 그런 모양새를 추구한 것으로 보일만큼 만들어 놨습니다. 서로 다른 장르의 나름대로 한 실력, 한 명성 한다는 음식점+베이커리 들이 모였고 가격도 그에 걸맞게 높되 푸드코트처럼 지하 전체의 어느 좌석에서나 앉아 그 음식점들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그런 컨셉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꽤 재미있기도 했고 신선하기도 했습니다. 듣자하니 갤러리아 최상층인 5층과 직통 연결된 엘레베이터를 통해 거기서 자리를 잡고 이 지하의 요리를 날라다 먹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것까지는 시도하지 않았습니다만.

친구와 제가 이 날 여기서 맛본 것은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라는 매장의 햄버거입니다. 일전에 이태원 음식 탐방 포스팅에서도 그 편린이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햄버거를 좋아하는 친구라- 저도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근 몇 년 자제했지만- 이 친구가 딱히 이 고메이494 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지 말해주지 않은 상태에서도 아마 여기일 거라고 짐작을 했더랬습니다만 그대로더군요.

저는 사실 서래마을에 있는 이 햄버거 집 본점에 이미 한 번 들러본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제 입맛에 맞지 않는 버거를 시켜서인지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았더랬습니다. 가격은 확실히 인상적이었지만서도. 그래서 이번에는 기왕 끌려온 거 가장 기본일 치즈 버거(치즈+패티+구운 양파 조합)를 시켜서 먹어봤는데 이건 꽤 괜찮더군요. 구운 양파의 풍미가 제게 날개를 달아 양파밭으로 이끄는...일 리가 없고, 장소가 시원하고 쾌적해서 맛이 더 났는지 몰라도 본점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싼 버거였지만 맛은 더 좋게 느껴졌더랬습니다. 물론 이쪽도 가장 싼 치즈 햄버거 단품 + 감자튀김(감자튀김 단품 주문시의 1/2 사이즈)과 음료수 한 캔(닥터 페퍼, 체리맛 코카콜라...나머지 둘은 뭐였더라?) 셋트가 1.4만원이나 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에서 싼 건 아니었지만 가격 대비 맛 비에서는 괜찮다 할 만했다고 생각합니다. 햄버거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순 미국식 버거라는 인상? 이전에 갔을 때도 그런 인상은 들었지만 가미비(가격대 맛비)에서는 그다지였는데 이번에는 그럭저럭 세이프였나 봅니다. 아니면 제가 이전에 비해 많이 인상이 후해졌던가.

하여간 이곳은 이외에도 부자 피자PIZZERIA D’BUZZA 라는 이태원 명물 피자 집도 있고 속초 코다리 냉면이니 감촌 순두부니 한식, 양식을 막론하고 다양한 장르의 음식점 들이 있어서 남녀노소 다양한 입맛과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을만한 곳입니다. 물론 푸드코트의 미덕이 바로 그것이긴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곳은 나름대로 급을 보장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아마 가격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 나들이라면 만족도가 높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한 1년에 한 번쯤 와야 부담을 느끼지 않을 듯 합니다만.

풍월당 홈페이지. 다음으로 간 곳은 서문에서 제가 언급했던 오래 전부터 들르던 음반 가게로 '풍월당'이라는 상호를 가진 곳입니다. 로데오 거리 안에 자리잡은 이 가게는 지금의 자리 이전의 위치- 라고해도 별로 많이 떨어진 곳도 아니지만- 였을때부터 들렀던 곳으로 나름대로 유명한 음반 가게이기도 합니다.

이 가게가 나름대로 유명한 이유는 클래식 음반을 전문으로 취급한다는 이유 때문일 터인데, 물론 작금에 우리나라 오프라인 음반 매장이 거의 전멸한 상태이기는 해도 온라인 서점조차도 클래식 음반은 다 팔고 있고 구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음반을 주문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입니다만 그래도 오프라인 매장이라는 것은 뭔가 특별한 데가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거기다 이 가게는 분위기나 인테리어도 손님을 편하게 음악에 묻어주는 느낌이라 마음에 들기도 하고.

CD(HQCD나 SACD도 포함), DVD, BD 까지 클래식 장르를 담은 미디어 전반을 취급하되 그 가격이 온라인만큼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는 곳입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분위기라던가 손님을 몰아세우지 않는 듯한 느낌(강매하는 것도, 그렇다고 신경을 아예 안 쓰지도 않는), 매장 한 쪽에 놓인 탁자와 의자 및 꽤 많은 클래식 관련 서적 덕에 꼭 음반 구매만이 아니라도 마음 편한 한 때를 즐기고 싶다면 들러볼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가격대 성능비'라는 것을 그렇게나 따지는 저도 이곳만큼은 예외라 간혹 들르고 있습니다. 온라인 매장이 더 싸다는 걸 알면서도 눈 앞에 바로 보이는 음반이 있어서 구매한 음반도 꽤 있는 걸 생각하면 견물생심이 무서운 건지 제가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건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웃음)

***

이 날 들러본 두 군데의 매장, 고메이494와 풍월당은 서로 취급하는 품목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공간의 형성/ 장식/ 시스템 등이 지나치게 젠체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나름의 멋과 맛을 추구했고 덕택에 취급하는 물건들에 대한 구매력도 높여주는 그런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소비자의 지갑 보전 심리를 무장해제시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공간 전술이라고 해야할까. 그 의도의 경중은 다를지 몰라도 이 둘은 이 점에서 닮았습니다. 물론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거나 개인 관심사에 비해 비용이 지나치게 부담된다면야 곤란한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경비원이 손님 옷차림 보고 쫓아내는 식의 진입장벽이 있는 곳들도 아니니까 무슨 위화감을 느낄만한 곳도 아닌지라 지나치게 나가지 않은 선에서 멋의 균형을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 개인적으로는 이 날의 아주 명시적인 수확은 풍월당에서 우연히 눈에 띈 음반 신보: 얀손스xRCO 조합으로 연주된 모차르트 선생의 레퀴엠 SACD를 구입했다는 것이고 덕택에 커피 한 잔을 공짜로 친구에게 대접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풍월당은 음반 구입자에게 매장 바로 옆의 공간 '로젠 카발리에'에서 커피를 공짜로 제공합니다.) 그러고보면 이 SACD에 대해서도 가까운 시일 안에 한 번 그 감상을 말씀드릴 생각입니다만 제가 레퀴엠을 특히 모차르트 선생의 그것을 좋아하는 건 '이야기'가 특히 와닿는 음악이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이 날 체험한 매장들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역시,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사람이었군.

PS:
이 포스팅을 여행 밸리로 보낸 건 1. 음식과 음악은 밸리가 따로 있고, 2. 아무리 집에서 가까운 동네라도 이 포스팅의 핵심은 여행과 그것을 통해 얻은 어떤 것이기 때문입니다.


덧글

  • ㅅᆞㅅ 2014/06/08 11:22 # 삭제 답글

    솔직한 말로 고메이 어쩌구는 부엌답지 않습니다. 건방지고 까진 부엌느낌이에요.
  • 城島勝 2014/06/08 12:44 #

    네, 뭐 분명히 그런 느낌도 없잖아 있고 본문 말미에 적었듯이 그게 더 크게 다가오는 분께는 곤란한 공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내부 디자인 자체가 어느정도 계층을 은연 중에 한정하고 배려한 느낌도 있고.

    다만 그게 바람직한지 여부는 떠나서 순전히 장사 전략상으로 볼 때는 선택과 집중, 개성 측면에서 괜찮았다는 생각은 듭니다.
  • amitys 2014/06/08 12:43 # 삭제 답글

    항상 저쪽 강좌는 들어보고 더 친숙해지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 않네요. 여유도 없고 시간도 없고...
  • 城島勝 2014/06/08 12:49 #

    풍월당의 강좌는 내용도 알차고 좋지요. 참가비가 있어도 비용만큼 얻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단지 클래식 음악 향유라는 취미의 진입 조건이 대개 그렇듯이 시간적, 심적 여유가 필수이기는 합니다.
  • SCV君 2014/06/08 20:16 # 답글

    풍월당이란 곳은 음반 매장이라기보단 음반매장이 부업(?)인 음향 관련 커뮤니티 같은 느낌이군요.
    오프라인 음반매장이라는 곳에 마지막으로 갔다온게 한 10년 전인가 그런데, 참 묘한 곳입니다.
  • 城島勝 2014/06/09 08:34 #

    네,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사교 공간이라는 감각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거기서 우연히 만나 같은 음반을 찾던 어떤 분과 친교를 맺기도 했고.

    그런데 10년 전에 마지막으로 오프라인 음반매장에 갔다오셨다면 저보다 연상이시군요. 전 영원한 아홉 살이니까 말입니다.(진지)
  • SCV君 2014/06/09 13:07 #

    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군요.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궁서체)
  • Hineo 2014/06/09 00:11 # 답글

    1. 고메이 494는 얼마 전 약간의 매장 변경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눈여겨본 점이 바로 이태원의 스테이크 레스토랑인 비스티카의 철수였습니다.(이때 스테이크 먹으려고 갔던지라 더더욱 눈에 띄었던 점) 비스티카의 경우엔 바로 옆에 미트 섹션이 있어서 그곳에서 산 고기를 일정 값을 받고 스테이크로 구워주는 서비스를 한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론 이 서비스가 고메이 494'다운' 서비스란 생각이 들더군요. 푸드 코트와 식품 코너가 영역이 나눠지지 않고 섞여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양쪽 모두 연계가 되는 컨셉. 다만 비스티카는 안 그래도 가격대가 센 고메이 494에서도 사실상 독보적인 톱을 자랑하는 알흠다운(...) 가격대를 보여준지라 어쩔 수 없이 철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2. 개인적으로는 고메이 494의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보단 서래마을이나 코엑스쪽의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취향상으로는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보단 버거 B쪽이 더 낫더군요.

    3. 개인적으로 비스티카의 철수와 더불어 고메이 494에서 이상하게 느낀 점은 바로 '동남아같은 아세안 음식 계열'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멕시칸 타코, 브리또도 있는데 왜 쌀국수나 커리는 없는지...(푹) 디저트 계열도 쵸콜렛 부분이 약한게 아쉽긴 한데(빈즈 & 베리즈) 에릭 카제르까지 들어온 마당에 요것까지 바라면 좀 사치인것 같아서 논외(...)

    4. 풍월당의 경우엔 주로 참석하는 카페(슈만과 클라라)의 모임 장소 무지크바움이 현재의 압구정역 부근으로 옮겨져서 요새는 인연이 별로 없네요. 그나저나 음반 하나 사면 커피가 공짜라니 왜 내가 백건우 베토벤 소나타 살때는 그걸 알지 못했지(OTL)
  • 城島勝 2014/06/09 08:52 #

    1~3. 아, 비스테카도 있었군요. 사 온 고기를 구워주는 서비스라니 확실히 말씀하신대로 공간 컨셉하고 잘 어울렸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격은 뭐...전 솔직히 디저트 계열 쪽 평균 가격대(특히 양이나 식사 대체 가능 여부를 고려한)가 더 무서웠던지라 그쪽을 먼저 보고 온 손님에겐 비스테카라도 그다지 어필하지 못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펑) 전 치즈케이크 팩토리 하나로 고메이의 디저트 계통은 모두 갈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극단파(웃음)입니다만 제가 이 가게 것을 사먹는데는 심호흡을 세 번은 해야 하는 난점이 있습니다.

    고메이에서 아세안 음식을 취급하지 않는 것은 글쎄, 전체적인 공간 디자인이라거나 포도주 취급 코너 등에 힘을 쓴 걸 감안하면 뭔가 서양적인 것이 이곳에 어울린다 이런 의식을 은연 중에 품었고 또한 방문객에게 품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한식이야 한국에 없으면 안 되니까 그렇다치고 멕시코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개의 선입견에 뭔가 미국과 도맷금으로 취급되는 경향도 있으니만큼. 버거 B는 제가 매장에 들르거나 먹어본 적이 없어 모르겠습니다만, 브루클린만 해도 뭔가 '패스트푸드 햄버거'라고 하기에는 뭔가 더 있어 보이는 미국 (대표)요리! 이런 느낌으로 입점한 것으로 보이고.

    4. 그러고보니 무지크바움은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래서 풍월당의 서비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도요.-_-ㅋ
  • 2014/06/10 02:1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城島勝 2014/06/10 05:42 #

    저런, 알겠습니다.
  • 만술 2014/06/10 14:25 # 삭제 답글

    저와 제 동료는 풍월당을 음반을 파는 커피숍으로 생각합니다. 또는 커피를 마셨더니 원하는 음반도 주네... 뭐 이런 느낌?^^
    음반 구입비에 신경을 쓰지 않던 시절에는 가격표 붙어 있지 않은 게 재미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뽑기운 처럼, 이건 여기서 얼마를 받을까 불안불안.... 요즘이야 음반구매도 시들해지고, 직장이 바뀌어 강남쪽은 강남역 인근만 다니는지라 갈일이 없지만요.
  • 城島勝 2014/06/10 16:39 #

    하핫, 네. 전 커피를 안 마셔서 누군가 동행이 있어야 말씀하신 마인드 체인지를 할 수 있습니다만(^^;), 가격표 안 적힌 건 저도 예나 지금이나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바코드 찍는 기계 만져보는 것도 재미있고. ㅎㅎ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