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꽃이 피는 첫걸음HSH, BD 자막 제작에 대하여 취미

극장판 꽃이 피는 첫걸음Home Sweet Home (이하 HSH)은 두 번의 포스팅(BD 감상문: 링크, 관련 이야기: 링크)을 통해 말씀드렸듯이 개인적으로 좋게 본 작품입니다만 TV판 꽃이 피는 첫걸음과는 달리 국내 방송사에서 정식 수입하지 않았고 BD/DVD의 국내 정식 판매도 기대하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디스크 미디어 여건상 정식발매가 불투명한 수많은 영화와 애니들이 산재하는 것이 사실이라 개인적으로 이들중 인상깊거나 특히 다른 분들께 보여드릴만하다 싶은 작품은 컨텐츠의 종류를 막론하고 나름의 열성을 기울여 이른바 개인용 BD 자막을 제작해 왔습니다. 오래전에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이하 마마마) TV판 BD의 자막을 제작하면서 이에 관련해 올린 연작 포스팅도 해당 작업에 대한 변이었고요.(물론 마마마는 개인적인 자막 작업을 다 끝낸 얼마후에 국내에 정식발매가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영상 비교 외에도 자막 비교도 하는 특이한 기회를 얻었기는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극장판 꽃이 피는 첫걸음HSH 역시 얼마전 입수한 BD에 맞춰 자막을 제작해 보게 되었고 이에 작업에 대한 변을 덧붙여 둘까 합니다.

당 극장판의 자막 제작에 있어서 대전제가 된 방침은 '자막을 통해 전달되는 캐릭터들의 대화가 자연스런 우리말 대화로 들리는가?'를 중시하는 것입니다. 이 컨셉은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우리말 어법에 익숙한 사람'이 이 작품을 본다고 가정한 것인데, 이는 이 작품을 특히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라는 포맷을 거의 접하지 않은 비매니악층 지인들에게 보여주는 쪽에도 무게를 두다보니 필요불가결 했습니다.

이것은 (이 작품을 접한 분이라면 아마 동의하시겠지만) 소재나 진행 자체가 워낙 '일반적으로 보는 실사 드라마 느낌'으로 접해도 무리가 없는 작품이라는 특성을 가진 덕분(혹은 때문)이며, 자막은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작품과 시청자를 잇는 다리이므로 작품 특성에 따른 시청자 타입을 감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기획은 1. 특히 사역형 표현으로 대표되는 부자연스러운 일본어 번역/직역투를 최대한 배제하고, 2. 상황에 따른 의역을 보다 유연하고 넓게 적용하며, 3. 몇 가지 일본어식 특이 표현은 최대한 비슷한 우리말로 치환한다. 입니다. 이외에도 개인적인 자막 제작시에 반드시 지키는 철칙 - 한 번의 표시 자막 당 최대 20자(기호나 띄어쓰기 포함 최대 40바이트)이내 제한도 여전히 지켰는데 총 983회 표시되는 자막중 영 좋지 않은 상황 - 예를 들면 번역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는 경우. '오하나'라는 이름으로 꽃을 연상하려면 일본어 지식이 필요하므로 설명을 붙이는 등 - 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전체 40바이트 이내로 줄이는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제 어휘 부족으로 인한 부적절한 단어 사용이라거나, 은연중에 언어 생활에 스며든 일본어식 표현이 무심코 사용되었을 수는 있습니다만 아예 신경을 안 쓴 것보다는 분명 자연스럽다는 것 정도는 조심스럽게나마 말씀드릴 수 있게 완성했습니다. 다만 표기에 있어서 외래어 표기법을 준수하지는 않았는데(특히 두음 표기 제한 등의 제한이 있는 일본어 한글 표기법) 영상물 텍스트에서 그리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단, 도쿄 같은 지명의 경우 워낙 국내에 널리 유포된 표현이라 그대로 썼음도 덧붙입니다.

이러한 방침을 따르면서도 등장 캐릭터별 말투나 상황에 따른 적절한 단어 선택은 워낙 TV판부터 이 작품을 모두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 온 입장이라 별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굳이 기록해둘만한 사항이 있다면 이름 뒤에 붙여 존칭이나 친애를 표하는 ~상(さん)과 ~쨩(ちゃん)의 처리 문제 정도가 있었는데, ~상의 경우 그냥 범용 번역인 '~씨'로 통일하면 인물 관계상 대화가 어색해지는 경우(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관계에 따른 번역에 주의를 기울인 케이스입니다. 예를 들어 주방장이자 주방 담당 3인방중 가장 연장자(42세)인 렌지 씨에 대한 다른 두 요리사의 호칭은 토오루의 경우 '렌 선배'/ 민코(위 스샷속의 여자아이)의 경우 '렌 아저씨'로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킷스이소의 사장이며 모든 종업원 가운데서도 두번째로 연장자인 주인마님 스이가 종업원들을 ~상으로 부르는 것은 모두 '~씨'로 통일했습니다.

한편 ~쨩의 경우 대부분 제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나('~야' 식으로 처리하는 것도 고려는 했지만 이 조합은 일부 특정상황을 제외하면 범용적으로 부르기 어렵습니다. 사용 뉘앙스상 "~야, 놀자~" 같이 상대를 인지하거나 명확히 부르려는 의도를 가진 상태에서 다가가거나 부르는 식 정도 외에는 쓰기 곤란합니다.) 한가지 예외로 덴로쿠 씨가 사츠키를 부를 때 쓰는 사츠키 쨩은 사츠키 아씨라 적었습니다.

덴로쿠 영감님은 오랫동안 사츠키의 어머니 스이를 주인마님(여관의 주인마님. 즉, 회사 상급자 관계)에 대한 예의로 대한 분이고해서 그 딸인 사츠키에 대해서도 이정도 용어는 우리말 정서상으로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아가씨'로 할까 했는데 다른 종업원들(오하나가 태어나기 이전의, 오래전 킷스이소 종업원들)이 사츠키를 부를 때 쓰는 '오죠お嬢'도 아가씨로 번역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덴로쿠 영감님의 특이한 위치 - 고용 종업원보다 더 주인마님과 가까운 느낌의 고용인 - 를 감안하여 좀 더 가까운 느낌의 다른 용어를 고심하다 선택한 게 아씨입니다.

다만 이러다보니 덴로쿠 씨가 무슨 머슴같은 뉘앙스가 좀 들기도 하는데(-_-ㅋ) 그런 부작용보다 아무래도 시골스러운 느낌의, 나이드신 분께 어울리는 단어라는 장점이 좀 더 있을거라 생각해서 최종 낙점하게 되었습니다. 뭐, 혹시나 덴로쿠 영감님이 기분 나빠하신다면 사과하겠습니다만 아마 기분나빠 하지는 않으실 것 같네요.

한편 문제가 된 부분은 크게 두 가지. 드문드문 나온 요리 관련 용어와 오하나의 입버릇 '봄보루'의 번역. 앞서도 언급했던 렌지 아저씨, 토오루, 민코가 속해있는 주방 파트는 이번 극장판에서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 관객으로 밀려난 것도 아니고 TVA와 얼추 비슷한 수준의 출연률을 갖는데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요리 이름이 나옵니다.

개중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것을 지칭하는 것들 예를 들면 豚肩은 돼지 전지, 活(き)造り는 활어회로 번역하면 OK지만 甘露煮(생선 같은 것을 달게 요리한 찜요리)는 그냥 생선찜으로(재료가 생선이라는 것은 작중 명시) 할 수 밖에 없었고, カマ燒き 같은 건 가마살 구이라는 말이 대충 통용되니까 다행이기나 했는데, 하일라이트(?)인 ゼリー寄せ(재료를 젤라틴 따위로 군데군데 응고시켜 담아낸 요리)는 아무리 고심해도 젤리 요리라고 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딱 한 번씩만 나오고 마는 단어들에 대해 지나치게 에너지 낭비한 것 같기도 하지만 작은 것도 중히 여기는 것이 번역하는 사람의 자세겠지요.

한편으로 이 작품이 만들어낸 신조어 '봄보루ぼんぼる'의 경우에는 TVA 당시에도 인터넷 자막 제작자들이 고심했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TV판의 국내 공식 방송사였던 애니플러스의 경우에는 '봄보 해야지'였던가로 번역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단어에 대해 설명을 이래저래 덧붙였던 TV판에서는 괜찮을지 몰라도 아무런 설명없이 이 단어를 쓰는 극장판의 경우에는 TV판도 본 사람에게는 상관없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을 위해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 단어와 가장 비슷한 조어 방식과 뉘앙스를 가진 단어'로 적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단어의 조어 방식인 '봄보리(불을 켜 드는 등롱) + 감바루(힘내다, 열심히 노력하다)' 를 가장 단순하게 살려서 '불내자!'(등롱, 등불 + 힘내자에서 앞뒤 합성)로 할까 했습니다. 이 번역은 1. 조어방식이 같고, 2. 뉘앙스 면에서도 비슷 (불타오른다 = 그만큼 열심히 한다라는 식의 우리말 뉘앙스에도 적합하며 불이 나도록 장사가 잘 된다라는 뜻도 있다. 결정적으로 작중 다른 인물들이 무슨 말인지 아리송해 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여 TV판 당시부터 나름대로 생각해둔 것이었는데, 막상 자막을 적고 생각해보니 '여관에 화재라도 나라는 소리인가...' 식으로 받아들이는 시청자가 있을 듯 하여 애매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기차게 만들었다 싶은지라 버리기가 못내 아까워서 결국 택한 절충안이, 작중 오하나와 나코의 대사중에 나오는 봄보루~는 '불내다'로 처리하고/ 후반 덴로쿠 영감님의 업무일지 표기에서는 '불같이 힘냈습니다.'로 풀어써서 이해를 돕기로 하였습니다.

한편 자막 작업의 양대 산맥,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번역보다 더 자질구레한 씽크 문제. 초벌 씽크 얼추 맞추는 거야 여러가지 자막 씽크 프로그램이 있어 그것을 이용하면 됩니다만, 이 자동 작업의 경우 일단 실제 타이밍에서 어색하거나 틀리는 경우는 다반사이고 또한 자막에 좀 더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면 작품과 함께 수동으로 검수하고 맞춰보는 작업은 당연히 필수입니다. 조립으로 비유하면, 전자는 가조고 후자는 색도 칠하고 데칼도 붙이는 작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저도 시간이나 노력의 한계라는 게 있으므로 디스크내 기본 자막이 있다면 그 씽크에 맞추고 할 일 끝! 하는 주의이기는 합니다. 대개의 영화 컨텐츠 BD의 경우 영어나 스페인어 자막이 딸려 있으며 더군다나 헐리우드 영화 BD야 영어 자막이 대사 언어와 가장 동일한 씽크를 제공하기 때문에 별무상관입니다만 대다수의 일본 애니메이션(특히 TV판)을 비롯하여 당 작품의 BD는 자막이 아예 없고 따라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씽크 또한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오히려 백지 스케치북을 접하는 것 같아서 불타오르는 데가 있어 - 사서 고생 같지만 - 씽크 작업에 좀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대화에 따라 전 자막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전 자막의 끝씽크과 후 자막의 앞씽크를 동일하게) 게 좋을지, 장면에 따라 자막이 잠시라도 사라져야 분위기가 날지(혹은 영상 보는데 방해가 최소화 될지), 대사의 뉘앙스(특히 의역의 뉘앙스)에 따라 장면 컷이 넘어가는 데도 자막을 남겨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좋을지? 등등을 고려합니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바로 작업자의 주의주장을 드러낼 수 있는 것. 물론 1차적인 주의주장은 번역이지만, 이 씽크를 통해 앞서 말한 소위 타이밍의 문제에 따라 은연중에 작업자의 주의주장을 드러낼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감정의 연결, 주제가 선명한 대사의 효과적인 전달 등등)

자, 하지만 문제는. 이래저래 열심히 설명을 했어도- 이 자막은 배포 예정이 없으므로 순전히 개인 만족일 따름입니다-(이 대목에서 김새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만) 이는 지금까지 제가 제작해 온 모든 자막에 공통된 사항이며- 따라서 실용적인 가치를 따지라면 지인분들과 시청할 때 도움이 되는 정도일까요- 하지만 저는 컨텐츠의 불법적인 유포 등에 대해 탐탁치 않게 여기는 측에 서 있는 사람이고- 그때문에도 당 자막은 배포할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국내의 수많은 온라인 자막 제작자 분들을 비난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 분들은 그 분들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고 저는 저 나름대로의 주의주장이란 게 있다는 것 뿐이지요.

하지만 이처럼 순전히 개인 만족이라 해도 좋아하고, 그런 수고를 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하니까- 이 개인 자막 작업은 제 나름의 예우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의역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리고 씽크를 세세하게 맞춰가면서 작품을 좀 더 속속들이 맛볼 수 있었고, 또한 이 작품은 우리말로 번역하는 재미도 느껴지는 작품이므로- 저 자신이 먼저 즐거웠습니다. 번역을 통한 이성의 작용, 씽크 조절을 통한 감성의 작용 모두 성장기의 청소년에게 도움이 되는 양분임은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청소년이냐고요? 그거야 물론 유이나가...아니아니 10대 정신연령을 가진 본인에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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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울러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이야기

여담 한 가지. 이 작품에서는 한일간 이슈 사항중 하나이며 최근 또 불거질 조짐이 솔솔 보이는 바다 이름 문제, 그러니까 '일본해'라는 표현이 한 번 나옵니다. 정말 잠시 지나가는 작품속 TV 일기예보에 나오는 아나운서 멘트지만 말이지요.

당 작품의 감독을 맡은 안도 씨가 밝힌 바에 따르면 해당 일기예보 장면은 현실의 지역 명칭을 언급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꽃이 피는 첫걸음의 주무대인 '유노사기 온천거리'가 일본내 실존하는 '유와쿠湯涌 온천거리'에서 모티브를 따왔음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입니다만, 정작 TV판 당시에는 작품내에서 명확히 유노사기가 지도상 어느 지역에 있는가 같은 건 명시된 바가 없습니다. 이는 본래 유노사기라는 지역에 소위 '판타지적'이랄지 하는 느낌을 남겨두기 위한 장치라고 제작진은 설명하고 있는데 극장판에서 이 유노사기 온천거리에 있는 온천여관 킷스이소(주인공들이 일하는 여관)에 수신되는 TV 일기예보에서 실제 지명(유와쿠 지방이 속한 가나자와 등의 지명)과 함께 지도 표기를 보여준 것은 '아, 이 지방이구나.'라는 것을 명확히 전달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즉, 제작진의 의도는 순전히 지명 표기에 있다고 해석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되며 특히 가나자와/유와쿠 지방이 바다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다시 말해 생활상 흔히 듣는 멘트라) 고른 멘트라고 생각됩니다.

이 동해/일본해 표기 및 호칭 문제는 일본내에서는 일본해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일본내에서 해당 해역을 토카이東海라고 지칭하여 대화를 하면 듣는 일본인이 이를 지칭한 사람이 의도한 해역이라 생각하는 경우는 없다고해도 좋습니다.) 일본내 상영을 목적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것은 (일본인에게)어떤 해역을 지칭하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데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해역 명칭 문제는 해상 영유권과는 완전히 별개의 사항이라는 점으로, 다시말해 독도와 동해/일본해 표기는 완전히 별개라는 점. 지금 말하고있는 저 해역(즉, 동해)이 설사 일본해 단독 표기만으로 전세계 공인을 받는다한들 - 물론이지만 우리나라로서는 반길 수 없는 일이고 저 역시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 독도가 한국땅임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때문에 일본 외무성 등도 그저께인가 웹에 올렸다는 독도 동영상 외에도 또 이 바다 명칭 문제에 대한 동영상을 따로 올린다 하는 것이고요.

때문에 이 작품의 제작진이 무슨 우익 의도 같은 것을 가지고 일부러 해당 멘트(일본해)를 쓴다해도 이는 별 의미없는 불발탄이나 다름없는 짓이 됩니다. 또한 애초에 이 작품은 2011년 공개 당시부터 지금까지 어떤 관련된 컨텐츠나 물품에서도 정치색이나 불필요한 트러블을 조장하려는 목적을 나타낸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제작진은 순전히 감독이 언급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만 일기 예보를 사용했고, 해당 멘트를 쓴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아쉽다면 아쉬운 점은 배려의 문제. 꽃이 피는 첫걸음은 극장판은 그렇지 않지만 TV판의 경우 우리나라 방송사인 애니플러스에서 판권을 산 작품이므로, 물론 한국에서 이 작품에 대해 알고 보는 사람도 있음을 제작진이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좀 더 꼬집어 말하면, 그 일기예보가 지역 위치를 보여주기 위한 것임은 알겠는데 딸리는 멘트가 꼭 '일본해 방면에 태풍이 운운'이어야 할 시나리오적 당위성 같은 건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으니 말입니다.(하다못해 계절감을 위한 멘트도 아닙니다. 일기예보 나오기 이전에 이미 작중 인물의 대사로 가을 연휴 시기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냥 '가나자와 지방에 비온뒤 맑음' 같은 멘트로도 감독이 원한 의도를 전달하는 데는 충분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여하간 이런저런 사항을 종합할때, 제작진이 해당 일기예보에서 일본해가 들어가는 멘트를 쓴 것은 상술한대로 지역 주민들에게 익숙한 멘트라서, 혹은 아무리 나쁘게 봐도 순전히 별 생각 없이 고른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겠습니다. 다만 앞서 밝혔듯이, 제가 자막을 제작한 컨셉은 우리나라 지인들의 시청 편의를 도모하기 위함이므로 뭐랄까 감상에 불편함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막에 '일본해'를 그대로 쓰는 게 상당히 저어했습니다. 그런데 앞서 밝힌대로 안도 감독의 의도가 저런 것임도 안 이상 그냥 '동해'라고만 쓰면 이번에는 1.보던 사람들이 일본의 동쪽 바다? 그럼 유노사기는 가나자와/ 유와쿠 지방이 아니라 그 유명하신 후쿠시마나 뭐 그런 일본 동쪽 연안 지방인가? 하고 착각할 수 있고 2. 때문에 감독의 의도 역시 잘 살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양국(우리나라의 시청자 및 일본의 제작자)의 기분을 모두 존중하여 채택한 절충안은 '일본 서쪽 해상'. 이 표현은 일본인에게 써도 별로 어렵지 않게 어느 해역을 말하는지 알아 듣기도 하고, 우리나라 사람이 해당 표현을 보아도 불쾌지수가 높아질만하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그리 적게 되었음을 명시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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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링고 2013/10/24 22:21 # 답글

    개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자막제작 및 유포를 그리 반기지 않습니다. 왠지 불법을 유도하는 것 같아서요.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는 자막을 볼 때마다 자막제작자의 배려보다는 작품감상자의 소양이 더 요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그 작품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유념해야 하는데 저 역시도 애니메이션을 볼 때면 가끔씩 그걸 잊어버리게 되더군요. 마치 한국 작품인 것처럼... (이것이 자막의 힘인가?)

    중간에 "불내다"라는 의역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저는 글을 읽으면서 이 작품과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초심지를 켜며 힘냈습니다" 라던가 "열라게 힘냈습니다" 그런 것들이 연상이 되더랍니다.;
  • 城島勝 2013/10/24 22:50 #

    인터넷 배포 자막 제작은 그것 자체로는 보다 많은 분들에게 모르는 언어 컨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일이고 순수한 선의에서 비롯된 분도 많으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단지 이때문에 자막을 포함하여 어떠한 컨텐츠에도 가치가 있음을 종종 망각하게 된다는 점은 분명히 개인적으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 바임도 덧붙입니다. 좀 더 좁혀 말하면 1. 자막이 막상 제작해 보면 굉장히 수고로운 일임을 무시하기 쉬워지며, 2. 자막에도 제작한 사람(혹은 그 자막을 사들인 측)의 권리가 엄연히 있음을 간과하게 된다는 것이 그러합니다. 물론 지옥의 거리에 깔린 돌은 모두 선의로 이루어져 있다는 금언처럼 세상의 일이 단순하게 양분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서도.

    한편 영상과 자막의 관계에 있어, 즐기기 위해 즐겁자고 보는 영상에서 불쾌함을 조장할 수 있는 요소는 지식 이전에 감성의 문제이고 굉장히 미묘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라이프 오브 파이' 같은 영화(정치적 이슈 조장 가능성이 없는 그것도 헐리우드 제작 영화)에서도 아주 잠깐이나마 'Japan Sea' 표기가 지나가는 문제가 있어서 말이 많았는데 BD의 경우 제작사 측에서 나름대로 한국을 배려했는지 정발 BD에서 한국어 메뉴일 때(BDP의 기본 언어를 한국어로 맞췄을 때)에는 그 표기가 나온 지도에서 해당 표기가 삭제되어 있고 다른 언어 메뉴일 때는 그대로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서 꽃이 피는 첫걸음 극장판의 미국판이 나온다면(TV판이 나온 바 있으므로 가능성이 있다 생각되는데) 거기 딸릴 영어 자막에서 어떻게 처리할지 좀 관심이 가기도 합니다. Japan sea라고 명기할지 그냥 아나운서 멘트쯤이니 자막 없이 넘어가는 것으로 덮을지.

    한편 말씀하신 봄보루의 의역들은, 후자는 여자애들 말투로 써주기에 좀 그렇고(웃음;) 전자는 좀 다르게 해석하면 '초심을 지켜냈습니다.' 같이 판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문제는 자막이 너무 길어져서 개인적인 철칙 - 20자 제한 - 을 지키기가 어렵겠습니다.^^;
  • 자막 2015/02/28 19:09 # 삭제

    링고님 헛소리는 그냥 혼잣말로 하세요.. ^^
    아무대나 댓글 쓰시면서 똥 싸지르지 마시고요

    일본해를 동해로 표기하는게 마치 한국 작품인 것 처럼?
    이게 뭔 말인지 막걸리인지 ㅋㅋ
  • 링고 2015/03/01 03:46 #

    이해하기 좋도록 이야기를 하자면 일본에서 만든 일본 작품의 정서를 가장 잘 살리려면 일본 현지 상황을 그대로 표현하는게 가장 좋다는 이야기임. 그니까 일본해로 표현되는 걸 그대로 표현하자는 말임. 보는 게이가 알아서 "일본해"를 "동해"라고 인식하면 된다는 것임. 원래 일본해를 동해로 바꾼 자막을 접할 때의 폐단은 본토내 일본 사람들도 우리 한국 사람들처럼 "동해"라고 동쪽 바다를 부르는구나 하는 오해를 부르는 것임.

    일본 작품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 불편하니깐 한국사람 자기 입맛에 맞게 기모노를 한복이라고 부르고 오사카 사투리를 부산 사투리라고 바꾸고 그렇게 한다고 그게 한국 작품이 되는 건 아니거덩. 내가 설명충이 아니다 보니 덧글 대충 적는 편인데 이러면 좀 이해가 갈려나.
  • 城島勝 2015/03/01 07:50 #

    주의주장과 논리의 논쟁의 시시비비 이전에, 쓸데없는 거친 언사나 비속어는 본 블로그에서 철저하게 지양하는 바입니다. 자막 님은 주의해 주시길.
  • 미자 2013/10/24 23:41 # 답글

    지난 학기에 직접 애니메이션 자막을 만들어 보는 수업을 했었는데, 글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상당히 고려해야될 게 많았습니다. 글자수부터 지명에, 사역수동이나 관용어구 등.
    긴 글을 읽고나니 작품 전반에 걸쳐 세세한 애정을 담으셨다는 게 확 와닿네요 ㅎㅎ
  • 城島勝 2013/10/25 06:41 #

    아아, 재미있는(만드시던 당시에는 안 그러셨을라나요^^;) 수업을 경험하셨군요. 저도 체계적으로 배웠다면 비록 개인용 자막이라도 좀 더 세련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기회가 없었던 관계로 그냥 무작정 제작해온 경험으로(= 시행착오를 통해) 멋대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애정은 확실하지만 애기 돌보는 법은 울리면서 배워가는 부모 같달까요-_-ㅋ
  • Dj 2013/10/24 23:54 # 답글

    한 작품의 자막을 제작해본 사람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보여서 여러모로 재밌게 읽었네요, 긴 글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城島勝 2013/10/25 06:43 #

    괜히 길기만 한 글인데 귀한 시간 내시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시는 분께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시는 건 저도 즐겁습니다.
  • SCV君 2013/10/27 22:01 # 답글

    이런것도 작업하시는군요. 개인적으론 들리는게 한계가 있어서 엄두가 안나는 작업이네요;
    무튼 잘 봤습니다. 제가 보는것과 별도로 자막 구경차 신세를 져야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 城島勝 2013/10/28 06:38 #

    하하, 네. 다음에 오시면 TARI TARI도 그렇고 작업해둔 얘도 보시면 되겠네요. ㅎㅎ
  • 2014/03/12 18: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3/12 19:1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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