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팟 속 전곡 태그 작업 완료 잡담

전 주력 오디오 플레이어로 와디아170i 커스텀을 쓰는 데, 이 물건은 재생소스를 아이팟(이나 아이폰)에서 취하는 아이팟 독(dock)입니다.

독이긴 하지만 진지하게 하이파이 주력 소스 플레이어로 쓰려다 보니 이런저런 손질을 하는 바람에 '독이되 독이 아닌'(웃음) 물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CD리핑시에도 WAV로 했고, 결국 제 아이팟(클래식 120G)에 든 곡의 95% 가량은 WAV네요.
WAV다 보니 천몇백 트랙 넣고 벌써 55기가를 채워버린 상태. 용량은 뭐 아직...이지만 리핑할 CD는 많이 남았고, 귀차니즘은 공습하고...아니, 이런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WAV파일의 단점 중 하나는 리핑시 태그(곡에 대한 상세 정보를 담은, 이른바 곡 신상명세서)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MP3 같은 경우 리핑시에도 바로바로 태그에 앨범 이미지까지 붙여주는 프로그램이 흔하고 아예 파일 자체에 태그가 붙어 버리기 때문에(이미지 파일을 문서에 포함시켜 버리는 것처럼) 공유나 파일 복사 시에도 태그 정보가 고대로 따라갑니다만, WAV파일은 리핑시에 태그를 붙여주는 프로그램이 거의 상용(즉, 유료) 프로그램이고 이나마도 파일을 복사하거나 공유시엔 태그가 안 따라가는(즉, 해당 리핑 혹은 재생 프로그램 전용의 태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메리디언의 스트리밍 소스 플레이어 솔루스를 쓰던지, LINN의 DS시리즈 용으로 만들어 파는 립NAS 등 이른바 리핑 서버 시스템에선 리핑시 WAV 파일에 자동으로 태그도 먹여주고 앨범 이미지도 넣어주며(WAV파일식으로 넣을 때도 인터넷 등의 검색을 통해 넣어 줍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몇가지 상용 유료 프로그램에서 WAV 앨범 이미지도 지원하는 등 이미 진보는 이루어져 있습니다만 그렇다해도 결정적인 문제는 몇 가지 있습니다.

1. 태그와 앨범 정보를 서버 혹은 인터넷 상에서 검색해서 가져다 붙이므로 간혹 잘못 된 태그가 붙는다.(희귀 혹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곡)
2. CD 자체에 곡 태그가 잘못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그 CD의 태그 정보를 가져오니까 오류.
3. (이게 가장 중요) 난 놀이삼아 오디오를 하는 데 저런 비싼 걸 어떻게 쓰냐?


각설하고, 애플의 무료(이게 가장 중요) 음악 플레이어 제어 프로그램이자 재생 프로그램인 아이튠즈는 언제부터였는가 모르겠지만 WAV파일에도 태그를 넣을 수 있습니다. (앨범 이미지까지 붙이는 건 여전히 불가능합니다만 언젠가는 지원되겠죠.)

저는 지금까지 태그를 넣지 않은 WAV파일들 덕분에 제 나름의 트랙 넘버를 부여하고 그것에 따라 기억을 뒤져서 원하는 음악이 있는 번호대를 찾아서 들어 왔지만 곡이 점점 늘어나니 그것도 할 짓이 아니고(제 뇌의 기억용량은 일반인의 1/10 수준입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할 작업이니 올해 가기 전에 해치우자 싶어서 제 아이팟에 넣어 놓은 곡들의 태그 작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나름 결벽증에 편집증까지 있어서 할려면 완벽하게. 이러다보니 리핑CD를 일일히 인식시켜 내부 태그를 확인하고 그걸 가져다 붙인 다음 잘못 된 것은 수정하는 식. 붙이는 태그는 곡명, 아티스트, 앨범명, 작곡가, 장르, 편집여부체크, 년도, 수록트랙 수/전체트랙 수, 수록디스크 장/전체디스크 장. (일부의 경우 묶음인가 거기도 뭔가 기록했습니다. 근데 이건 아이팟 내에선 정렬할 방법이 없는 듯?)

잘못 된 것이라면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같은 슈베르트 선생님이라도 Franz Peter Schubert 라고 작곡가 태그를 넣은 CD가 있고 Franz Schubert 라고 넣은 CD가 있는 데, 이걸 그냥 CD에 든 태그 정보대로 가져다 넣으면 작곡가 검색시에 같은 인물이 두 사람으로 분리되서 나오게 되므로 이런 걸 하나로 통합해 주는 것. 물론 이런 건 잘못 된 것이라고까진 할 수 없지만, 진짜 잘못 된 것도 가끔 있었습니다.

진짜 잘못 된 것의 예는 PS3판 화이트 앨범OST CD. 디스크 1번장에 있는 '그 때 처럼 ~Remix~'와 '눈의 마법(Game ver.)'. 전자는 아티스트가 Suara씨로 되어 있고 후자는 아티스트가 아쿠아 플러스로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뒤바뀐 거지요. 좀 제대로 하란 말이다 아쿠아 플러스 짜샤들. 한정판 동봉도 아니고(동봉CD 에서도 그럴 것 같지만 미확인) 돈받고 따로 판 CD에서 이러면 어쩌라고.

한편 다운(유료) 받은 WAV음원 파일의 경우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최대한 알아낼 수 있는 범위까지 알아내서 수동 작성. 여기저기 검색하고 뒤지고 하다보니 이쪽은 시간이 배로 들더군요.


말로 하면 간단(한가...)하지만 실행은 몇 배쯤 곤란해서 단순 노가다성에 가까운 작업인 데 토요일부터 어제밤까지 퇴근하면 이것에만 매달렸습니다. 주말에 출장지에도 아이팟 들고 가서 이 짓 하고 있었으니 말 다 했죠.(-_-;) 뭐 출장지에 들고 간 CD는 모차르트 프리미엄 에디션 같이 얇은 종이 케이스라 부피랑 무게가 덜 나가는 것들만 가져가긴 했지만.

다 하고 나서, 아이팟에서 직접 앨범명/아티스트/작곡가 검수를 통해 같은 사람이 둘로 나온다든가(텍스트를 넣을 때, 맨 뒤에 빈 공간의 여부 때문에도 같은 게 두 개로 나뉩니다. 예를 들면, 'johjima'하고 'johjima '는 다른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이야기. 당연히 어순배열상 바로 인접하게 되니까 별로 상관없지만 기분 나쁘니까 수정해야죠, 암.) 하는 경우를 확인해서 수정.

작업의 결과 물론 앨범, 아티스트, 작곡가, 장르 별로 수록 된 곡들을 나눠서 볼 수 있으니까 예전보다 음악 듣는 게 더 편해졌습니다.
다만 이것만 노리고 이런 귀찮은 작업을 한 건 아닙니다. 뭐랄까, 소유감이랄지 정성이랄지 그런 게 들어가서 곡을 듣는 게 한층 각별해 졌달까 그런 마음이 듭니다.

사실 모든 걸 다운로드로 해결 할 수 있고 파일로 왔다갔다 해도 충분한 세상이지만 디스크 매체 상품이 팔리는 이유는 소유감의 충족과 만족감이란 심리에 호소하는 바도 있다고 생각하는 데, 전 음질이나 편의성의 이유로 음원 재생 시스템을 선택했지만 음원은 참 소유감이 떨어지기도 하거든요. CD를 케이스에서 빼서 트레이에 놓는 그 귀찮은 과정이 실은 심리적 만족감을 주고 있다고 하면 우습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음원들에 태그를 일일히 붙여주고 나니 - 수동으로 직접 -, 빛이 바랬던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 낸 기분이 듭니다.
어쩌면 쓸데없는 짓이고, 심리적 만족감을 위해 귀한 시간을 낭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불완전한 인생에 어느정도 낭비는 필요하니까요. 아, 이건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작품 중에 나온 이야기입니다만.


여하간 이번 작업을 통해 덤으로 제 아이팟도 꽤 오래오래 함께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싸다는 이유로 중고로 구매한 것이고, 전 소유주가 좀 굴렸는지 액정창에 기스도 많고 한 물건. 그리고 이 태그 정보를 넣은 WAV는 아이튠즈를 통해 다른 애플 기기와 공유가 가능한 걸로 알고 있으니까 지금 아이팟에만 집착할 건 없지만 그래도 덤으로 좋아해 줘도 될 것 같은 기분도 드는군요. 왜 그런 거 있잖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취미도 좋아하게 되는 것 같은...(웃음)

그럼 이제 또다시 보다 재미있게 놀 궁리를 해 봐야죠. 곧 24일도 다가 오니까요. 핫핫.
재미없게 길기만 한 글인데 블라인드 처리를 안 해서 본의 아니게 눈에 비친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사오며, 여기까지.


덧글

댓글 입력 영역